무대 바깥의 진정한 주인공을 위해작년 10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놀랄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소설가 한강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수상 소식은 그동안 노벨문학상과는 크게 인연이 없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숙원을 일거에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른바 K-문학으로서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문학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엄밀히 말해 단독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간 후보로 거론되었던 문인들의 노력을 비롯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려고 애쓴 숱한 문인들의 정성이 축적되고 나서야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을 만한 치열한 소설적 작업을 진행해왔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겠다.다른 무엇보다도 그녀의 소설적 작업은 지난 역사를 대하는 인간의 윤리적 자세를 묻고 그것을 끈기 있게 지켜나가고자 했던 점에서 뜻깊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건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 속으로 역사의 지층에 매몰된 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녀는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된 자들의 침묵으로 들어가 불분명한 신음이나 울부짖음에 가까운 고통스러운 언어를 가까스로 끄집어낸다. 그리고 한평생 악몽과 같이 엄습하는 잔혹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산산조각 나버린 살아남은 자들의 영혼을 말없이 어루만진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그녀의 문장을 경유하여 타자의 죽음과 아픔이 되살아나는 장소로 들어가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값진 일이지 않겠는가. 우리는 결국 타자의 삶을 대신할 수 없겠으나 미약하나마 타자의 슬픔과는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이처럼 필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통해 문학의 힘을 새삼 느끼면서도 노벨상의 무대에 선 다른 이들에게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바로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로서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즉 니혼 히단쿄(日本被団協)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1945년 8월 미국에 의해 무시무시한 원폭이 투하되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하여 1956년 일본 원폭 생존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이들은 끔찍한 피폭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증언을 통해 핵무기의 사용과 확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기울였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공로가 충분하다고 판단되지만, 사실 한국인 원폭 피해 2세가 그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는 것을, 그리고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상당수에 달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적지 않은 것 같다.과거의 역사에 관해 무지한 것만큼이나 다양한 결을 지닌 역사를 거대한 카테고리로 묶는 방식 또한 지극히 위험하다. 그건 단순히 통합과 봉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역시 우세한 목소리와 미약한 목소리가 중심과 주변의 권력관계에 따라 편제되고 마는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그러할 때 우리는 유난히 돋보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됨에 따라 정작 가시권과 가청권을 벗어나는 대상과 목소리를 놓칠 우려가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작 무대의 바깥에 진짜 주인공이 있을 수 있다고, 역사의 외부에 진정한 고통의 진원지가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에 따라 필자는 이제는 기념비적인 시집이 되어버린 고 허수경(1964~2018) 시인의 첫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를 꺼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현재의 진흙밭에 드러난 과거 역사의 바퀴 자국을 들여다보고 있거니와 침묵과 어둠에 내몰린 자들의 미약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는 개별자의 목소리들 밀려오는 복통으로 잠 못 이뤄 퉁 퉁부은 두 다리 주무르는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원폭의 밤칠흑 같은 어둠 저 너머소녀는 실려가고 있었습니다히로시마 나가사키 사십만 목숨이일거에 도륙되던 그날번쩍이는 섬광 눈부신 불길이 오르고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미치게 살 타는 비릿내구역질나는 거리폐허의 거리를 트럭은 시체를 싣고미처 숨 놓지 못한 목숨들도마구 싣고바다에 버리고 불로 태우고 구덩이에 묻던원폭의 도륙보다 더 짐승 같은도륙 속에트럭 꽁무니에 매달려 애원하던 소녀온몸에 불을 뒤집어쓰고남은 숨 모두어통곡하던 소녀살려주세요 난 아직 안 죽었어요학도보국대 미쓰비시 군수공장 잡역부검은 몸빼 목노발검은 밥에 소금국눈부신 꽃세월 마른 버짐으로 피어나던조선 소녀여 ― 허수경, 〈원폭수첩 2〉,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문학사, 1988이 시에서 시인은 폭력의 역사가 한 사람의 몸에 새겨넣은 겹겹의 고통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일제 강점기 피식민지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육체적인 고통이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일본은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병참기지로 만들고자 했고, 당시 노동력을 가진 청년들을 강제 징집하여 전쟁터와 각종 공장으로 끌고 갔다. 이 시에서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에 사는 한 할머니 또한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잡역부”로 끌려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영위하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려야 했다. 당시 소녀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차가운 군수물자를 생산하려고 “눈부신 꽃세월”을 허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마른버짐”이 온통 연역한 피부를 뒤덮을 만큼 얼마나 혹독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 위에 더욱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을 내려 앉힌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그녀가 있던 히로시마의 중심부에 예상치 못한 원폭이 투하된 것이었다. “번쩍이는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한 원폭은 “눈부신 불길”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사십만 목숨”을 “일거에 도륙”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한순간 지옥으로 변해버린 곳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결코 피폭의 후유증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는 못했다. 밤이 되면 “밀려오는 복통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퉁 퉁/ 부은 두 다리”를 주무르느라 밤을 지새워야 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육체적인 고통은 날카로운 화살과 같이 한평생 그녀의 삶을 관통해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녀가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될 때야 그 참혹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이 처절한 정신적인 고통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건 원폭이 투하된 그날, 그녀가 겪었던 비인간적인 행위가 생생한 기억이 되어 그녀의 이후 삶을 덮친 데에서 발생한다. 당시 원폭이 휩쓸고 간 현장에서 사람들은 거리에 쌓인 시체뿐만 아니라 “미쳐 숨 놓지 못한 목숨들”까지 실어 날라서 바다에 버리거나 불로 태우거나 구덩이에 묻는 방식으로 대량 처분했다. 그때 그녀는 가까스로 “트럭 꽁무니에 매달려 애원”하여 위태로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같은 인간을 “짐승”과 같이 취급하는 인간의 바닥을 엿보고서 극심한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살아남은 그녀의 몸 자체가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아우르고 있거니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매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별자의 몸을 우리는 특수한 역사의 몸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허수경 시인은 결코 원폭 피해자들을 동일한 카테고리로 묶지 않지 않으려는 섬세함을 놓지 않고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중 70%가 경남 합천 출신이었으며, 현재에도 250여 명에 달하는 고령의 생존자와 2세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다. 하지만 허수경 시인은 이들의 고통을 평균적인 감정으로 치환하기보다는 개별적인 목소리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고유한 감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에 사는 “김 씨”의 경우 같은 처지에 놓인 “소녀”를 외면하고 혼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고(〈원폭수첩 3〉), “최 여인”의 경우 원폭으로 인한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두 번째 유산”을 함에 따라 절망감에 빠져 있다(〈원폭수첩 3〉). 이처럼 이들의 고통은 유일무이한 각자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고통을 통한 연대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남성의 역사 바깥에 살아남은 여성의 삶어머니의 꿈길은 언제나 팔포 앞바다썩어가는 굴양식장 시커먼 소금길지리산 밤사나이 친정 오빠 거두어 태우던 삽작고개켜켜로 내려앉은 연기로 무성하다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 외로운 꿈길가슴을 비워버린 시대는 곧잘 어머니에게 말을 걸지만아무도 모른다 왜 어머니가 젓갈을 달이는지남지나해 습기 찬 해풍을 알 길 없는 화덕이불을 담아 젓갈 달여 가시를 지우지만말간 국물 속에 무엇이 되살아오는지 알 수 있을거나그것이 때론 팔포 앞바다 썩은 굴처럼 서럽고갓 삼십 친정 오빠남새파도 고랑파도 팔포바다 저리도 흔한 파도길에 쓸려영영 돌아오지 않는 1950년의 진실처럼 아린지어머니의 꿈길로 절며 돌아오는 반도의 발효된 꿈이여― 허수경, 〈젓갈 달이기〉,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문학사, 1988또한, 이 시집에서는 남성 중심의 거대한 역사 바깥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여성들의 역사를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전자를 향해 후자를 대치시킨다거나 헤게모니의 쟁취를 통해 양자의 자리바꿈을 꾀하려는 시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후자가 전자를 부드럽게 포용하거나 양자의 고유한 속성을 통합하여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사내들의 영광” 뒤에는 “아낙들의 눈물”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사내들이 험난한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그것을 뒷받침한 배후의 지지대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남강시편 3〉). 그러니 우리는 이 시집에서 역사의 폭압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처지에 놓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부각하고자 하는 것을 진정한 역사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이 시에서는 거센 역사의 파고를 건너온 “어머니”의 슬픔을 “젓갈”의 특성에 담아내고 있다. 일차적으로 어머니에게 젓갈은 역사의 폭력으로 인한 상실감과 아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어머니는 전쟁의 검은 기운이 “팔포 앞바다”를 짓밟고 감에 따라 한순간에 삶의 근거지를 잃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이념 대립의 극화로 인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친정 오빠”를 하루아침에 잃고 말았다. 아마도 그녀의 오빠는 고향에서도 멀지 않은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군경 토벌대와의 격전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오빠의 죽음은 그녀의 상처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새겨진 상처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젓갈을 달이는 것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고향과 이념 대립으로 희생된 가족을 기억하고, 그 먹먹한 상실감을 달래려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젓갈의 비릿하고 짭짤한 맛은 그녀에게 서러움과 아픔의 맛인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젓갈로부터 역사의 상처를 읽어내는 데 그치는 것은 그녀의 “꿈길”에 모난 돌멩이들을 흩뿌려놓고 마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이 시에서는 마지막 행에서 “어머니의 꿈길로 절며 돌아오는 반도의 발효된 꿈이며”라며 어머니의 꿈과 반도의 꿈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자아낸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서럽고 아픈 과거의 역사이지만 그것을 기억의 저편에 두지 않고 끊임없이 지금-여기로 되살릴수록 더욱 선명해질 테니까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가 젓갈을 달이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잘 간직하여 다음 세대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다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젓갈의 비릿하고 짭짤한 맛은 누군가에게 더욱 오묘한 맛을 내게 될 테니까 말이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시집에서 슬픔이 붉은색의 스펙트럼과 결합하여 다양한 시적 의미를 파생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리산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붉은 감과 같이 역사의 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자들의 원한일 수도 있다(〈지리산 감나무〉). 그리고 그것은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과 같이 다른 생명을 소생시키려는 모성성일 수도 있다(〈폐병쟁이 내 사내〉). 또 그것은 죽은 자를 묻은 자리에 들어선 “고추밭”과 같이 새로운 삶을 생성시키려는 죽은 자의 밑거름일 수도 있겠다(〈탈상〉). 그러니 살아남은 자들이 지금 이곳에서 남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모두의 집”을 찾아 나선 여정이후 허수경 시인은 이념 대립의 전쟁에서 도피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모두의 집”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득한 역사의 지층에 파묻힌 폐허의 도시를 발견하며 인간의 유한성에 몸서리쳐야 했고, 세계 각지의 것이 완벽하게 뒤섞이는 새 고향에서 차가운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함께 노래를 하고 꿈을 꾸”는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그녀가 남긴 시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귀한 이유가 거기 있다.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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