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기억될 것이고 우리는 그 기억을 가르칠 것이다.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사람들은 두려움보다는 너무도 오랫동안 참아왔던 불의를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감도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늘 게걸음으로 진실을 찾아가니까요! 확신은 진실을 찾아간다는 것, 그러나 그 과정은 게가 걸음하듯 옆으로 걸으면서 앞으로 쉬이 나아가지 못한 체 때때로 우왕좌왕 하며, 악이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 되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며 절망으로 향해가기도 하는 것 지난 한 달이 그랬던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그리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물론 저 거대한 거악이 스스로의 모순으로 소멸해가는 그 섬세한 과정을 기억해야겠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 세상을 뒤흔드는 저 잔혹한 악의 정신을 상세히 묘사해야겠지요. 그리고 기록해야겠지요.그리고 또 하나 게걸음으로 걸어오며 보았던 우리의 모습이겠지요.내가 우왕좌왕 게의 걸음으로 걸으면서 살펴본 것은 세상의 측면이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때때로 우왕좌왕 하지만 결국은 앞으로 향하고 있는, 게걸음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정치학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요. 정의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성에 대한 질문, 불평등에 대한 해결은 아주 느린 속도로 이뤄져왔다. 우리는 늘 후퇴의 경험에 익숙하다. 이런 후퇴의 경험으로 인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낙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의 가치를 믿는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아주 좁은 보폭의 걸음으로, 힘겹게 이곳까지 왔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몇 달 전까지 우리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낙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있었고, 무력하기도 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울에 숨어있었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을 세상에 대한 절망이 나를 머물러 있게 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섬광처럼 일어나는 짜릿한 희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내일은 또 깊은 절망과 더딘 게걸음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나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오늘의 짜릿한 희열이 무엇을 변화 시킨 것일까요? 어쩌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일 수도…나는 단선적이고 일직선으로 도약하는 이 거대한 역사의 시류가 두렵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이고, 과거 늪처럼 부여잡던 그 모순들을 망각하게 하는 이 순간이 두렵기도 합니다.나는 우왕좌왕 게걸음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의 좌충우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지속적인 망설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선적이지도 일직선으로 모든 것을 정렬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그 소시민들의 좌충우돌과 망설임, 그리고 때때로 일직선적이고 단선적으로 도약하려는 자들에게 태업을 보이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자신의 걸음을 멈추거나 옆으로 걸어갔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들의 망설임이, 그들의 태업이, 그리고 그들이 지닌 최소한의 양심이 만든 좁은 보폭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진보하게 만드는 것이겠지요.우리 또한 비겁했고, 절망의 늪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었고, 때때로 폭력적인 가해자이거나 침묵으로 일관한 동조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찰나의 섬광 같은 순간에 그 모든 부채를 살라버릴 기회를 찾고자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짜릿한 희열에 찌릿한 통증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 그 까닭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우리는 이것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 단선적이고 일직선적이었던 폭압의 역사에 휘말려 사라질지도 모를, 게걸음으로 걸으며 우왕좌왕했던 우리의 양심이 호소했던 내적 통증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것입니다.그 통증은 여의도 공원에서 자신의 담임 선생님이 역사 선생님이라며,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어주는 역사 선생님들이 고맙다고 인사한 한 한 학생에게 감동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통증입니다.그 통증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그 말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중립이라는 용어에 기대어 망설이고, 멈추어 있던 어제와 용기 내어 한발 내디딘 오늘의 내가 만든 간극의 통증입니다.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추운 겨울 여의도 광장에 깃발이 펄럭였습니다.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백 년 전의 깃발로 오늘 다시 이 공간을 채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묘한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그 전율의 이유는, 그것이 지금의 문제를 가장 적확하게 겨냥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를 배반하고 결단코 실패하고 말 광폭한 폭군의 제거가 우리의 근원적 과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입니다.섬광처럼 일어난 이 극단적인 사건 아래에 숨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권력의 구조, 그것은 바로 기회주의이며 그 기회주의의 화신이 우리의 눈앞에 그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이 순간이 그리고 그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전율을 일으키게 했던 것입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바로 그 기회주의를 적확하게 겨냥하여 싸우는 것이며,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할 그 어떤 토양도 형성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일 터입니다.우리는 교사입니다. 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에 기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기여가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탁월한 기회주의자가 되도록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우리 역시 기회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오늘의 이 광장에서 전율과 함께 동반하는 통증을 통해 고백해야지 않을까요?나는 게걸음으로 광장까지 왔습니다. 우왕좌왕하며, 때때로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가, 모든 것을 방치해 두었다가, 가끔은 나쁜 것에 동조하기도 하며, 기회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런 날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측면으로 걸으며 그래도 언제 가는 진보의 보폭을 만들어 낼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나는 기억할 것입니다. 저 광폭한 악이 자기모순으로 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그 섬광 같은 극단적인 사건에 숨어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었던 불의의 권력의 구조가 드러나는 이 순간을, 그리고 이 순간 일어나는 나의 내적인 통증을…그리고 가르칠 것입니다. 하나는 저들의 불의를, 또 하나는 우리의 통증을, 그리고 통증을 아는 우리가 게걸음으로 힘겹게 이곳까지 오게 된 민주주의의 여정과 가치를…정의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성에 대한 질문, 불평등에 대한 해결은 아주 느린 속도로 이뤄져왔다.우리는 늘 후퇴의 경험에 익숙하다. 이런 후퇴의 경험으로 인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낙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의 가치를 믿는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아주 좁은 보폭의 걸음으로, 힘겹게 이곳까지 왔다.- 알랭 바디우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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