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에 관한 망각우리는 늘 먹고 있으나, 먹는 동안 어딘가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망각은 한 순간에 일어난 사건과 같은 것이라기보다 여러 단계에 걸쳐 분출된 재난에 가깝다.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어느 순간 익숙한 일이고, 습관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자동성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레 주체와 객체의 자리가 뒤바뀌는 가치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그때 우리는 먹기 위해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에 느끼는 씁쓸함도 잠시, 우리가 생존경쟁의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치 전도조차 은폐되어버림으로써 맹목적인 식욕에 관한 망각은 완성된다.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미각을 통해 지금 여기와는 다른 시공간을 누비고 다닌다. 그때 미각을 통한 여정은 충동적이고 무의식적이기에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내 미각 경험을 한 번 돌이켜보라. 우리는 팔팔 끓는 된장찌개의 냄새만 맡고도 그 언젠가 내 입맛을 사로잡았던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워지지 않던가. 그리고 그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고 나서도 마음 어딘가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러면 타지에서 먹었던 음식은 어떠한가. 역시 우리는 진기한 음식을 맛보면서 그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기질과 심성을 상상하지 않았던가.그러니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미각을 매개로 하여 다른 시공간으로 여행하는 일과 같다. 한국의 시인 중에서 이 사실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시인이 바로 1930년대 모던보이로 알려진 백석(白石, 1912~1995)이다. 그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였으나, 서울을 비롯하여 창원, 통영, 고성, 사천 등 경상남도 지역을, 그리고 함흥, 장진, 신흥 등 함경남도 지역을, 또한 영변 등 평안북도 지역을 쏘다녔다. 심지어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일찌감치 이국의 정서를 맛보았으며, 일제 말기에는 광막한 만주 일대를 떠돌아다녔다. 이때 그의 여정과 감흥은 남행시초(南行詩抄), 함주시초(咸州詩抄), 서행시초(西行詩抄) 등 이른바 기행시와 지역명이 도드라진 시들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물론 백석의 여행은 이러한 물리적인 이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과 함께 그의 여행은 미각을 기반으로 하는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여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간 음식에 주목하여 백석의 시에 접근한 연구에서 드러났다시피, 백석의 시는 음식에 관한 인문학적 보고라고 할 만하다. 현재 100여 편 남아있는 그의 시 중에서 음식이 나오는 시가 60여 편에 달할 만큼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거니와, 거기서 음식 가짓수는 110여 종에 이르고 미각 형용사는 23회나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의 시에서 음식 여행을 통해 그가 어떠한 세계를 엿보았는지 살펴볼 만하다.공동체의 역사를 향한 시간여행눈이 많이 와서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이것은 오는 것이다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문장》 제3권 4호, 1941이 시에서 백석은 음식과 미각을 통해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행을 감행하고 있다. 그 음식이 바로 국수인데, 이는 말 그대로 가늘고 흰 면발로 만들어진 국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시중에서 흔히 이르는 평양냉면을 가리킨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평양에서는 냉면 대신 국수라고 불렀고 그것이 외부에 전달되면서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통적으로 평양지역에서 국수는 겨울이 되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고, 실제로 시의 서두에서는 눈이 많이 내린 한겨울에 한 가정에서 들뜬 마음으로 국수를 준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니 백석은 그 지역 출신으로서 어릴 적부터 국수를 먹고 자랐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이 시를 썼을 것이다.흥미롭게도 백석은 이 시에서 국수를 인간의 삶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국수를 “이것”이라는 대명사로 지칭하는 것과 함께 반복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나 있다. 첫 번째로, 이 시에서 국수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공동체로 나타나 있다. 이 마을공동체는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이라는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혈연과 성씨의 공통성에 따른 전형적인 집성촌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마을공동체는 결코 구태의연하거나 강제적인 사고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특히 2연에서는 “이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반복하는 가운데 국수의 맛과 재료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마을공동체의 존재 방식에 답하고 있다.   그러면 재료의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시에서 나타났다시피, 국수는 메밀면과 함께 “동치미국”, “고추가루”, “산꿩의 고기”, “식초”, “육수국” 등 개별적인 재료들이 모여 만든 총체적인 산물이다. 물론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국수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없다. 그러면 맛의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역시 국수는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들이 조화를 이룬 맛을 자아낸다. 그래서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온전하지 않은 국수의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집단성을 이루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전체성을 향해 고유성과 독자성을 발휘하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국수를 먹으면서 살가운 친밀함과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두 번째로, 이 시에서 국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마을공동체가 거쳐온 내력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백석은 “이것은 오는 것이다”라는 시어를 반복하여 지금 국수가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담겨오기까지 여정을 내다보고 있다. 그 여정은 정확한 연원을 추정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하며 또 아직 살아남아 있을 만큼 끈질기다. 그러니까 국수는 이 마을 사람들이 생겨나기 이전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 마을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하는 인간 역사를 담고 있으며, 또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서 탄생하게 된 산물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끊어질 듯하면서 이어지는 국수의 면발로부터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떠올릴 법하다. 그러니 이 시에서 백석이 국수를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나의 뿌리를 되돌아보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갈 방향을 탐색하려던 시도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세계여행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그리고 누구 하나도 부럽지도 않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 〈함주시초(咸州詩抄)―선우사(膳友辭)〉, 《조광》 제3권 10호, 1937이 시에서 백석은 나를 둘러싼 생태계를 종횡무진 누비는 세계여행을 감행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함경남도 함주군을 유랑하다가 이 시를 썼다. 타지에서 혼자 “흰밥”, “가재미”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을 앞에 두고 그는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고 능청스럽게 말하고 있으나, 실상 그는 전혀 쓸쓸하지 않다. 그건 바로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만한 대상과 정서적인 공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 전체에 걸쳐 “흰밥”, “가재미”, “나”를 일일이 호명하면서도 이들을 “우리들”이라는 대명사로 묶고 있다먼저, “우리들”이라는 표현에는 인간중심주의 또는 주체 중심주의의 특권을 내려놓으려는 겸허함이 담겨있다. 실제로 그는 밥상에 올라가 있는 “흰밥”과 “가재미”를 “선우(膳友)”, 즉 반찬 친구라고 친밀하게 표현했다. 여기에는 이것들을 비인간 또는 객체로써 정복하거나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드러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백석이 살다 간 일제강점기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오히려 인간 이외의 것들을 맹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심지어 인간 사이에도 구별 짓기를 합리화함으로써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백석이 “흰밥”과 “가재미”를 “우리들”이라고 정답게 부르는 말은 정신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우리를 향해 있기도 하다.또한, “우리들”이라는 표현에는 “나”를 생태계의 일원으로 되돌려놓으려는 안간힘이 담겨있다. 생태계의 차원에서 보자면 사실 “흰밥”와 “가재미”와 “나”는 생명이라는 공통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평등하며, 또 잠시라도 정체하는 법 없이 우주적인 순환성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죽음 이후 다른 존재의 몸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세상의 존재들은 영원하다. 그래서 백석은 “가재미”가 맑은 물밑 모래톱에서 오랜 시간 모래알을 헤며 끈질기게 살아온 삶, 그리고 “흰밥”이 벌판에서 물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단 이슬을 먹으며 헤쳐온 삶과 자신이 외딴 산골에서 솔개 소리를 배우며 다람쥐와 놀고 자라온 삶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이다.그러니 우리는 그가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라고,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 까닭을 알 것 같다. 생태계 속에서 내가 다른 존재들과 생명이라는 보이지 않은 끈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그가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는 생태계의 일원이었기에 가난해도 풍요로울 수 있었고, 외로워도 충만할 수 있었던 거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또 급진적인 자세인가.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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