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경북통합 논의 무산`을 선언했다. 언론들은 핵심 쟁점 사항의 상당 부분에서 접점을 찾았지만 막판까지 청사와 시·군 권한 문제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좁히지 못한 것이라 했다. 잇따라 대구시와 경북도의회는 감정적 성명을 주고받았으며,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홍 시장의 "대권 행보"까지 꼬집었다. 일단 이철우 지사는 도의회라는 방패 뒤에서 관망하는 모양새다.
메가시티라는 대의명분이 홍보되는 동안에도 비판이나 반대는 장삼이사의 삼삼오오 대화에 흔히 오르내렸다. 홍준표와 이철우의 노회한 정치적 계산(대권 행보와 3선 단체장)에 갇힌 협상이다, 경북 북부의 반대가 높아서 자칫하면 이철우의 3선 가도마저 험난해지니 주민투표 하자는 거 아니냐, 설령 합의하더라도 국회로 넘어가면 민주당이 받아주지 않을 거다, 새로운 거브넌스를 출범하자는데 시민단체의 존재감이 허약하다, 대구시의회나 경북도의회나 일당체제니까 자기네 단체장을 향한 목소리가 미약하다----. 다 어긋난 쑥덕공론이라며 마치 왕소금 맞은 생선처럼 펄쩍 뛸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으되, 다 들어맞은 관전평일 수도 있겠다.어차피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라서 그냥 지켜보았던 나는 이번 기회에 다른 목소리도 존재한다는 점을 남겨놓으려 한다. 위의 관전평들에 포함되지 않은 두 가지 문제로서, 작은 것과 큰 것이 있다.먼저, 작은 것을 짚어둔다. 이철우 지사는 포항에 이미 경상북도 동부청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 통합에서 대구와 안동(현 경북도청)에만 청사를 두자고 했고, 홍준표 시장은 대구ㆍ안동ㆍ포항에 청사를 두자고 했다. 나는 이철우 지사의 그런 주장을 몹시 의아하게 여겼다. 경북 동부청사를 버젓이 두고 있지만 지사가 한두 차례일망정 상징적으로라도 거기서 종일 근무를 해본 적 있었는가? 너무 멀어서 잠깐씩이나마 이따금 들리기에도 힘들었는가? 그랬다면 더더구나 포항과 경주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민의 편의를 배려했어야 했다. 설령 홍준표 시장이 포항을 배제하자고 주장하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설득했어야 옳지 않은가? 대구경북 국제공항을 하루빨리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지역민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런데 국제공항만으로 되는가? 인천과 부산이 보여주듯이 반드시 국제항만도 갖춰야 한다. 다행히 대구경북에는 국제항만 위용을 갖추고 꾸준히 성장하는 포항 영일만항이 있다. 인입철도, 인입도로 등 인프라도 완비되었다. 환태평양 거점 항만, 부산항의 주요 보조항에 걸맞게 육성해 나가야 한다. 대구경북이 통합한다면 포항 국제항만의 존재이유는 국제공항만큼 중대해진다. 그런데 왜 이철우 지사는 앞장서서 대구경북 통합에서 포항 청사를 배제하자고 했는가?지난 2022년 봄날에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그때부터 포항지역에는 이강덕 포항시장이 4년 뒤 경북지사에 출마할지 모르니 이철우 지사가 미리 김을 빼려는 것처럼 포항을 홀대하기 시작한다는 말들이 나둘고 있었다. 2023년 7월 `포항제철 준공 50주년 기념 용산 전쟁기념관 사진전 개막식 취소 헤프닝`을 포함해 몇몇 구체적 사례를 소환할 수 있지만, 나는 무산된 TK통합 협상에서 포항 청사를 배제했던 이철우 지사에게 `그릇이 커야 한다`는 고색창연한 금언(金言)을 거울 같은 선물로 보내주고 싶다. 다음, 큰 것을 살펴보자.초광역통합(메가시티)이 지방소멸 방어와 지방재활의 특효 정책인가, 연방제를 도입하지 않을 바에야 오히려 새로운 국가적 난제를 잉태하는 것인가?메가시티 홍보에서 인구 계산을 내세우는 당위적 주장은 허황해 보였다. 대구경북을 합치면 480만명인데, 서울은 940만명이다. 그런데 인구 50만 포항시의 면적만 해도 서울시의 1.8배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480만 인구가 대구시에 오골오골 모여 살면 그건 메가시티 기능을 획득할 수 있다. 광역시와 도(道)를 통합하여 자치 권한을 강화한다고 해서 서울 같은 메가시티로 웅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 행정단위 개편에 대해 기존의 도(道)를 폐지하고 인구 100만 단위 기준의 자족형 도시 조성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도시에 경제 주거 교육 의료 문화 교통 등 자족형 인프라를 갖춰주기 위한 장ㆍ중ㆍ단기 정책의 로드맵과 예산을 여야 합의로 확립해야 하고, 그 위력에 굴복한 중앙정부 관료들이 반기를 들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여러 권한을 자족형 지방정부로 이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지방소멸 방어를 넘어 지방재활을 이뤄내고, 저출산을 끝장내고, 일상에서 행복한 국민이 대폭 늘어나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또 하나의 간선도로라고, 나는 생각한다.물론 그러한 행정 개편 논의는 정부와 국회와 시민사회가 국가의 사상이요 비전이라 불러도 좋은 헌법을 개정하는 차원에서 공론화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보여주는 이른바 정계(政界)의 정치적 수준이나 오직 정파(政派)에 의해 거의 노예적이고 맹목적으로 갈라진 팬덤세력의 실상에 비춰볼 때는 그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 같은 일이다.그렇다고 해서 홍준표 시장과 이철우 지사가 윤석열 정부를 지탱해주는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형도를 활용해 마치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대구경북 메가시티의 근본적 문제와는 다소 떨어진 책상에 마주앉았던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가?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은 대구경북 통합이라는 메가시티 시도에 내재됐던 한국적 특유의 문제들을 이제라도 제대로 따져보고 더 바람직한 미래지향적 행정 개편에 대해 헌법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옥상옥 같은 도를 없애는 자족형 100만 도시든, 시도 통합의 메가시티든, 또 다른 무엇이든, 지방재활과 저출산 극복과 더 높은 행복지수를 담보해줄 가장 적합한 헌법적 행정 개편을 위한 공론화 뉴스가 언제쯤 국민 앞에 나타나겠는가? 마침내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그날이 오기는 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