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고서(古書)를 수집하는 취미가 생겼다. 고서라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어 수집하는 장르가 분명치 않으면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사게 된다. 필자의 기준은 포항 출신 선비의 문집이나 포항 관련 시가 수록된 타지역 출신 선비의 문집이다.문집을 수집할 때 목록에 포항 관련 한시가 있는지 가장 먼저 본다. 다음으로 문집 뒤쪽의 행장을 보고 어느 지역 선비인지 살핀다. 운 좋게도 알고 있는 포항 출신 선비의 문집이면 목록도 보지 않고 구매한다.    포항 인근의 경주․영천․영덕 선비들의 문집도 주목하는 편이다. 이곳 선비들은 가까운 포항을 오가면서 지은 시가 많기 때문이다. 내연산과 보경사 시는 영덕이나 울진 선비들의 문집에, 죽장 입암 시는 영천 선비들의 문집에 제법 보인다. 그래서 고서 판매 사이트에서 지역명을 검색어로 넣어 이 지역 선비의 문집이 나왔는지도 살펴본다.   포항 출신 선비의 문집을 수집해보니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 흥해 양백리 출신인 운와(耘窩) 채구장(蔡九章, 1684~1743)의 ≪운와문집(耘窩文集)≫을 낙찰받을 때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사는 소장자가 이 문집을 내놓았다. 그런데 소장자는 ‘구름 운(雲)’자를 써서 책 제목을 ≪운와문집(雲窩文集)≫이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김맬 운(耘)’자를 쓰는 ≪운와문집(耘窩文集)≫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문집의 서문을 보았다. 놀랍게도 서문에는 소장자의 소개와 달리 ‘운와 채공 유고(耘窩蔡公遺稿)’라고 되어있었다. 소장자는 분명히 인터넷에서 한글로 ‘운와’를 검색해서 나온 ‘운와(雲窩)’를 그대로 이 문집의 이름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사실 소장자가 소개한 ‘운와(雲窩)’는 영천 선비 정하원(鄭夏源)의 호(號)이고 그의 문집이 ≪운와문집(雲窩文集)≫이다. ‘구름 운’자를 쓴 이 ≪운와문집(雲窩文集)≫은 채구장의 ≪운와문집(耘窩文集)≫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만일 ≪운와문집(雲窩文集)≫으로 보고 지나쳤으면 포항 출신의 중요한 선비의 문집을 놓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영덕 출신의 선비 박신지(朴身之, 1629~1705)의 ≪소호집(小湖集)≫을 구매할 때다. 이 문집은 대구의 한 소장가가 6만 원에 내놓았다. 소장가가 올린 목록을 보니 <내연산에서 노닐며 존재 이 선생의 시에 차운하며(遊內延山次存齋李先生韻)>라는 시가 한 수 있었다. 시 한 수 때문에 이 문집을 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검색해도 ≪소호집≫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 시를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결국 낙찰을 받았다. 시 한 수에 6만 원을 들여 내연산 관련 시 한 수를 건진 셈이었다.   필자는 현재 열여섯 분의 문집을 소장하고 있다. 이중 포항 출신 선비의 문집이 7책 23권* 경주․영천․영덕․울진 등 출신 선비의 문집이 9책 26권이다**. 이들 문집은 포항을 노래한 한시의 보고이다. 흥해 양백리 출신인 운와 채구장의 ≪운와문집≫만 봐도 총 201수의 시에 56수가 포항 지명과 관련 있다. 장기 출신인 눌암(訥庵) 오형필(吳衡弼, 1826~1904)의 ≪눌암문집(訥庵文集)≫에는 장기와 구룡포 관련 시가 26수가 수록되어있다. 또 울진 출신인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 1524~1605)의 ≪대해선생문집(大海先生文集)≫에는 청하 관련 시가 10수 보이고, 영천 출신인 남창(南窓) 정제(鄭梯, 1689~1765)의 ≪남창집(南窓集)≫에는 입암 관련 시가 8수 등이 보인다.   * 소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수암문집(守庵文集)≫, 정사진(鄭四震, ?~1616), 죽장 출신. 2. ≪운와문집(耘窩文集)≫, 채구장(蔡九章, 1684~1743), 흥해 출신. 3. ≪동와선생문집(東窩先生文集)≫, 권득중(權得重, 1687~1754). 죽장 출신. 4. ≪포암집(逋菴集)≫, 권주욱(權周郁, 1825~1901), 죽장 출신. 5. ≪눌암문집(訥庵文集)≫, 오형필(吳衡弼, 1826~1904), 장기 출신. 6. ≪석송당유고(石松堂遺稿)≫, 이진구(李震久, 1840~1911), 신광 출신. 7. ≪노치당문집(老痴堂文集)≫, 황보집(皇甫鏶, 1853~1930), 동해면 출신.   ** 소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잠계유고(潛溪遺稿)≫, 이전인(李全仁, 1516~1568), 경주 출신. 2. ≪대해선생문집(大海先生文集)≫, 황응청(黃應淸, 1524~1605), 울진 출신. 3. ≪월포선생문집(月浦先生文集)≫, 장현도(張顯道, 1564~1634) 인동 출신. 4. ≪소호집(小湖集)≫, 박신지(朴身之, 1629~1705) 영덕 출신. 5. ≪해헌선생문집(懈軒先生文集)≫, 황명하(黃命河, 1651~1715), 울진 출신. 6. ≪이매당문집(二梅堂文集)≫, 남신명(南愼明, 1678~1753), 영덕 출신. 7. ≪남창집(南窓集)≫, 정제(鄭梯, 1689~1765) 영천 출신. 8. ≪운고문집(雲皐文集)≫, 장시표(張時杓, 1819~1894), 인동 출신. 9. ≪현장세고(玄庄世稿)≫, 조시섭(趙始燮, 1726~1801)․조기원(趙基元) 청송 출신.   필자가 포항 출신 선비들의 문집을 수집하게 된 것은 ‘당근마켓’에서 한 골동품수집상이 올린 한 더미의 고서 사진을 본 것이 계기였다. 고서 사진에는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과 황응청의 ≪대해선생문집≫을 비롯한 ≪평해황씨세보(平海黃氏世譜)≫와 ≪도봉서당고왕록(桃峯書堂攷往錄)≫ 같은 귀한 서책이 있었다. 책은 오래되어 누렇다 말고 검은색이 감돌았는데, ≪퇴계선생문집≫과 ≪대해선생문집≫은 족히 20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판본이었다. 사진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매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의 가격이 4만 원이었다. 그로부터 필자는 포항 출신의 문집과 포항 관련 시가 수록된 타지역 선비들의 문집에도 관심을 가졌다.   사실 필자가 수집한 것은 포항 출신 선비들이 남긴 문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필자가 의미를 부여하고픈 것은 이렇게라도 모으지 않으면 포항 출신 선비들의 문집을 볼 기회가 영영 없기 때문이다. 문집의 번역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포항을 노래한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시들은 문집 속에서 화석이 되어 매몰되어 갈 것이다. 포항 출신 선비들의 문집은 실전되었거나 어느 곳의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채구장의 ≪운와문집≫은 전라북도 익산시의 소장자가 내놓은 것이고, 신광 우각리 출신인 석송(石松) 이진구(李震久)의 ≪석송당유고≫는 대구의 소장자가 내놓은 것이며, 동해면 출신인 황보집(皇甫鏶, 1853~1930)의 ≪노치당문집(老痴堂文集)≫은 경기도 고양시의 소장자가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포항 출신 선비들의 문집이 포항에 없고 전국을 떠도는 것은 확실히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름난 문인이 포항에서 남긴 시와 자취는 기리면서 정작 포항 출신 선비들이 남긴 역사적인 시에는 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문화 축제는 열면서도 지역을 노래하고 지역의 역사를 담은 귀한 자료에는 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 지역의 문화를 다채롭고 흥미롭게 가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포항에서 지어진 문집을 수집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인 자료를 발굴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항에는 내세울 만한 인물이나 작품이 없다고 탓만 할 것도 아니다. 포항 출신 선비들이 남긴 시를 읽어보자. 거기에는 지역의 문화를 살찌울 무궁무진한 소재가 있다. 우리가 그동안 주의하지 않았고 몰랐을 뿐이다. <포항문화원 소식> 제41호(2024년 6월)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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