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에 새겨진 인류의 꿈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누구이고, 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말년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이 질문에는 물론 자아를 둘러싼 횡적인 축과 종적인 축에 관한 질문을 동시에 품고 있다. 횡적인 축에서 보자면 자아는 나 이외의 수많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복합적인 정체성에 따라서 규명된다. 그러니 자아는 복수이고 또 그만큼 유동적이다. 종적인 축에서 보자면 자아는 지금의 나를 형성하기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생명의 기원과 계보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그러니 자아는 역시 복수이고 또한 역사적이다.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자아 성찰이란 나와 타자 사이에 다리를 놓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서 미래의 길을 터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물론 우리에게 그러한 작업의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텐데, 그 중 종적인 축의 계기를 우리는 유서 깊은 유물과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유물과 유적만큼 과거와 현재를 철저하게 갈라놓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단숨에 건너뛰게 하는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대한 고분 주변을 거닐 때, 마치 거기로부터 아득한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던가. 어쩌면 라스코동굴 벽화를 처음 본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 또한 그러한 심정이었을 것이다.우리의 가까운 조상들이 남겨준 [예술적, 문화적] 자산들에 우리가 더 보탠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조상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감정을 정당화해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말이다. ‘라스코인’은 무(無)에서 예술의 세계를 창조했으며, 이 세계에서 정신들의 소통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라스코인’은 자기의 먼 후손인 현재의 인류와도 소통하고 있다. 어제의 발견에 의해, 시간의 끝없는 흐름에도 변질되지 않은 그림들이 현 인류에까지 도달해, 우리는 지금 그 앞에 서 있다.― 조르주 바타이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워크룸 프레스, 2017익히 알려졌다시피, 라스코동굴 벽화는 1940년 프랑스 남서쪽에서 발견된 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기원전 1만 7천 년~5천 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굴의 벽화에는 말, 황소, 사슴, 사자 등 여러 짐승이 어둠 속에서 깨어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경이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바로 바타이유는 이 벽화에서 당시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조상들이 창조해낸 “예술의 세계”를 엿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이 “예술의 세계”를 통해 “자기의 먼 후손인 현재의 인류”와 정신적인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처럼 예술을 통한 아름다움의 전달 혹은 교류에 대해 그는 “우정의 감미로움”이라는 매력적인 표현을 덧붙이기도 했다.물론 이러한 바타이유의 생각은 모호한 주관으로밖에 증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가 라스코동굴 벽화로부터 받은 “강렬한 느낌”을 좀 더 따라가 본다면, 우리를 온전한 인간을 만드는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왜 그러한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그에게 라스코동굴 벽화는 “예술의 세계”였다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생존을 위한 사냥을 넘어 자기의 삶을 표현하기 위한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실용성을 띤 전자의 시선에서 볼 때 후자의 행위는 별다른 이득을 거둘 수 없는 무용성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후자가 있기에 인간의 삶은 매끄러운 표면과 단단한 중심을 지닌 알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이런 점에서 바타이유는 라스코동굴 벽화로부터 단순히 역사의 지층에 파묻힌 과거의 흔적을 본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엿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건 바로 불완전한 반쪽짜리 인간이 자기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반쪽짜리를 찾아 진정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 말이다. 그 길은 결코 멀리 있지는 않다. 우리에게 그 길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도 새겨져 있을 만큼 공통적이다.주인 인간이 자기의 목에 겨눈 칼멀고도 아득한 시간이었네기억조차 캄캄한 과거였어라사슴이여 호랑이여 동무들이여족제비와 도마뱀이 이웃이 되고돌고래가 물개에게 바다를 나눠 주니인간은 바다와 하나였었네인간은 들판과 하나였었네고래여, 물을 품고 헤엄치는 고래여새끼를 등에 태워 젖을 주는 고래여낮이면 해가 빛을 품었고밤이면 바위들도 침묵했지만물개와 도마뱀과 거북이 틈에사람들은 더불어 땀을 흘렸고바다와 들판에 함께 살았네울타리가 있었다고 너는 묻는가그물이 있었다고 물어보는가족제비도 소도 울타리로 들어서고울타리 안의 주인은 따로 없었네고래여, 물개여 사람들이여대지의 고요를 아는 짐승이여작살도 배도 밧줄도 있었지만작살의 주인이 따로 있었으리우리도 그날을 기억하리니바위에 새겨진 만 년의 시간이여바위에 새겨진 우리들의 고향이여오늘은 바다조차 메말라가고들판에 풀잎마저 시들어가는데우리는 너무 오래 주인이었네우리가 죽인 바다 주인이었네우리가 죽인 들판 주인이었네우리는 너무 오래 피만 흘렸네끝없이 끝없이 피만 흘렸네― 김명수, 〈기억의 저편―반구대 암각화에 부쳐〉, 《바다의 눈》, 창비, 1995이 시에서 시인은 기억의 저편과 이편의 경계에 서서 반구대 암각화를 바라보고 있다. 앞서 바타이유와 마찬가지로 그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일종의 “예술의 세계”를 마주하는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7000년여 전의 신석기시대에 우리의 조상들이 주로 고래 사냥을 하며 처절한 생존을 영위해왔다는 사실을 말해주지만, 이는 백지와 같았던 돌에 새겨진 기호의 향연이라는 점에서 생존을 넘어선 세계에 진입해있다. 생존하기에 급급한 인간에게 예술적 행위만큼 무의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반구대 암각화는 그들의 삶에서 꿈틀대는 창조의 표출이었고, 그들의 정신이 지향하는 세계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아득한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려고 하는가. 이는 “반구대 암각화는 경남 울산의 태화강 상류에 있는 바위 위에 새겨진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암각화임. 자연과 인간과 우주의 합일 속에 생산의 공동 참여와 분배의 공정이 이루어지는 원시적 합리성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새겨져 있음.”이라고 시인이 직접 붙인 각주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가 보기에 “기억조차 캄캄한” 시간의 저편에서 그들은 공존과 상생의 원리에 따른 풍요로운 삶을 펼쳐 보인다. 그들은 당시 다른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었다기보다 자연과 우주와 “동무”나 “이웃”과 같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혼자서 필요 이상의 양식을 독점하기보다 모든 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얻기 위해 더불어 노동할 줄 알았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다른 존재와 호혜적인 관계를 맺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회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인류의 꿈은 시간이 흐르면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바로 인간이 자연과 우주를 지배하려는 유일한 주인의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바다”와 “들판”을 오로지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위한 전쟁터로 탈바꿈하고야 말았다. 이제 그의 발길 아래서 바다는 역동적인 생명의 운동을 펼쳐 보일 수 없을 만큼 “메말라가고” 있고, 또 들판에서는 “풀잎”과 같은 끈질긴 생명의 상징이 “시들어가”고 있을 만큼 파괴와 소멸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바다와 들판이 피를 흘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끝없이” “피만 흘렸”다고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인간은 어쨌든 생태계의 일원에 불과하기에 그가 생태계를 향해 겨눈 칼은 끝내 그를 향해 돌아오는 법이다. 그러니 그가 생태계의 주인이라며 오만방자할수록 그의 칼은 혹독한 피를 지불하고 말 자기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억의 저편에 있는 잃어버린 낙원으로부터 기억의 이편을 뒤덮고 있는 어둠을 밝힐 희미한 빛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부재의 진실과 고래의 꿈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듣는다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봐,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저 아래 물밑을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쏜살같이 해협을 달려봐야겠다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꿈이 하나 있다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송찬호, 〈고래의 꿈〉,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이 시에서 시인은 부재의 진실을 통해 사라진 고래가 돌아올 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미 고래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들어 그의 허황한 꿈이 결코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 사람이 그가 품고 있는 부재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엄밀하게 보자면 부재는 ‘없음’과 ‘없었음’으로 구별되고 이 각각이 ‘있음’과의 관계성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즉, ‘없음’과 ‘있음’의 관계는 존재의 불가능성에 관한 극적 비약을 의미한다면, ‘없었음’과 ‘있음’의 관계는 현존의 불가능성에 관한 가능한 이행을 의미한다. 그러니 전자의 기적이 거의 연출에 가깝다면, 후자의 기적은 상당히 실천에 가깝지 않은가.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났다시피 아득한 선사시대로부터 불과 1970~80년대까지 고래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동해는 이른바 ‘고래 바다’로 불릴 만큼 대왕고래, 귀신고래, 혹등고래 등 여러 고래가 자유롭게 왕래하던 곳이었고, 또 울산 장생포는 우리나라에서 고래잡이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국제적으로 포경이 금지될 만큼 고래의 개체수가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고래의 소멸을 불러일으킨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시인은 회상의 형식을 통해 고래가 바다에서 마음껏 춤을 추었던 당시의 눈부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심해에서 공동체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배운 “허밍”과 “해마”, “농게 가족” 등 가까운 이웃들이 살아가는 소식 말이다.이런 점에서 그가 현실 곳곳에서 고래가 살았던 흔적을 발견한 이상 “늘 고래의 꿈을 꾼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현실 자체를 기적이 출현할 수 있는 무대로 창조하는 일일 것이다. 그게 바로 그가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는 일이다. 물론 이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형상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그에게 이는 사소한 일상을 가능성의 활동 무대로 만드는 실천과 다르지 않다. 결국 그러한 실천들이 점차 축적되어 갈 때 그의 꿈은 황홀한 기적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