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른바 사회적 존재로서 바라볼 때, 색깔은 언어와 동등한 위상을 가진다. 우리는 언어와 색깔을 통해 세계를 특정한 의미로 분류해왔고, 또 그렇게 분류된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이해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와 색깔에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형성할 뿐 아니라 타자와 다양한 관계성을 형성해간다.
이런 점에서 언어와 색깔은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침묵이 인간을 보다 온전한 존재로 만드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무색이 인간을 보다 풍요로운 존재로 만드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색깔이 가진 이러한 도발적인 속성을 읽어낸 사람으로 우리는 현존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를 들 만하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검은색에 헌정하는 매력적인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으니까 말이다.“인간이 바라는 보편적 차원에서는 백인도 흑인도 결코 실존할 수 없다.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 알랭 바디우, 박성훈 옮김, 《검은색―무색의 섬광들》, 민음사, 2020 물론 이 말은 그가 앞에서 “인간이 바라는 보편적 차원”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종 간의 차별이나 인종 간의 평등을 넘어선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검은색의 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심상치 않게 쓰고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이는 재료로서 검은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서 검은색을 담지하고 있다. 바로 그가 고백한 체험에서 드러나듯, 검은색은 우리가 처한 맥락에 따라 삶과 죽음, 결여와 초과, 금지와 해방 따위의 양극성을 띠고 있거니와 검은색-하얀색, 검은색-붉은색으로 분화되어 전혀 색다른 의미를 띠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이 글에서 문득 검은색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제주도 출신의 한 시인의 시집을 넘겨본 것에서 연유하였다. 이 시집은 마치 제주도의 90%를 이루고 있는 거무스름한 현무암에서 탄생하였다는 걸 뽐내듯이 시집 곳곳에서 검은색의 향연을 펼쳐내고 있다. 이를테면, 이 시집에는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캄캄하고 차가운 저녁, 밤, 새벽을 배경으로 오래도록 “우리의 모든 죄”로 기억될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과 죽음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재의 풍경〉).
물론 이런 현상은 시집의 표제 ‘애월’에서 나타나듯 제주도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제주 4·3사건에서 비롯하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그 참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일 테지만, 시라는 것은 단순히 역사의 증언이 아니라 역사의 애도로 육박해가기에 보다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결국 역사를 마주한 자에게 시는 저주이자 축복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시집에서 역사의 애도 작업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몇몇 시를 음미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밤에 애플민트를 꺾었다꺾은 자리가 떨렸다실직한 이와 오랜만에 만난 술자리였다김 모 시인이 말했다여리고 슬픈 것들은쓰다듬어 손으로 향기를 맡는 거라고술집 유리창에 발이 사라진나와 일행이 허공에 떠 있었다실직한 이의 얼굴이 창백했다집단 학살터였던 박성내 다리 앞이었다얼굴이 붉어진 나를실직한 자의 밤을살려준다는 말을 믿고제9연대 군인 트럭에 실려와집단 학살된 백오십 명의 맨발을이지러진 밤의 애플민트가사과 향기로 어루만져 주는 밤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다시는 풀과 꽃을 꺾지 않으리― 서안나, 〈밤의 애플민트〉, 《애월》, 여우난골, 2023 첫 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한 사람의 삶을 매개로 하여 과거와 현재, 공동체와 개인의 역사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전승과 계승의 교량술은 위의 시에서 드러나듯 ‘밤’, 즉 검은색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외부의 폭력에 의해 “이지러진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시에서는 이 폭력의 현장을 “박성내 다리”라고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각주를 덧붙이고 있다. “4·3 사건 때 함덕국민학교에 모인 와흘, 함덕 등의 주민들 3백여 명 중, 자수하면 살려준다며 1백5십 명을 철사로 묶어 트럭에 태웠다. 제9연대 3대대는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다리에서 이들 모두 집단 학살하고 시체는 불태웠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인은 바로 제주 4·3사건 당시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고 무고한 희생자가 속출했던 현장에서 그날의 비극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때 그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게 된 계기가 “밤의 애플민트”를 꺾은 것이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 사실을 폭력성으로 인식하게 한 “김 모 시인”의 말 때문이다. “여리고 푸른 것들은/ 쓰다듬어 손으로 향기를 맡는 거라고” 말이다. 그뿐 아니라 삶에서 중요한 지분 하나를 상실한 사람, 즉 “실직한 자”가 일행이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니 시인의 눈은 “술집 유리창에 발이 사라진 나와 일행”을 그날 무참하게 사지가 잘린 이름 없는 희생자들과 겹쳐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상황에서 시인이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 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며 역사의 폭력성과 일상의 폭력성을 연결하는 윤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윤리성의 요인을 다른 것으로 채워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곳은 그에게 “물빛이 아버지의 눈빛과 닮”은 곳이고(〈애월, 서투른 결심〉), “돌아가는 아버지가 지렁이 되어/ 정원에 주름을 만들며/ 어머니 이마 위를/ 느릿느릿 지나”가는 가족사의 무대이기 때문이다(〈애월, 겹주름치마상추〉). 그 누가 장소에 서린 소중한 가족을 향해 작은 폭력이라도 행사하겠는가. 그러니 그가 다짐하는 사소한 윤리성은 역사로부터 이어지는 검은 밤을 밝히는 단단한 횃불이 될 것이다.
고백은
고백할수록 더 참혹하다우리는우리의 추악함을 견뎌야 한다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위구르족을재교육 캠프 수용소에 가두었다백만 명 이상 사망했다수용소에서 탈출한 여성은 밤마다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고백했다카자흐족 여인은 수감된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손을 묶어중국인 남성에게 넘겨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4·3 때 제주 전역에선 군경과 서북청년단이양민을 집단 학살했다마을이 불탔고 사람들이 총살당하고 불태워졌다선민공작으로 백기를 들고산에서 투항한 이들은 주정공장 수용소에 갇혀 총살되거나육지의 수용소로 이감되거나배에 태워져 수장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서안나, 〈애월, 신장 위구르〉, 《애월》, 여우난골, 2023 두 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제주의 역사를 매개로 하여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월경의 감행은 일차적으로 검은색으로 표상되는 억압의 역사와 마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바로 위의 시에서는 우리나라의 제주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나란히 동등한 위치에 놓는 방식으로 억압의 역사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할 때 억압의 역사에서는 우리를 “참혹”하게 만드는 “고백”의 문장들로 넘쳐나고,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우리의 추악함”을 견딜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하나의 중화민족이라는 요새에 강제 편입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중국으로부터 점령과 독립을 수차례 반복해오다가 1949년 강제 병합된 이후에도 비인간적인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을 요구하다가 “재교육 캠프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가혹한 노동과 고문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폭력에 희생되었다고 이 시는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검은 폭력을 제주 4·3사건 당시 국가적인 차원에서 민간인에게 행해진 폭력과 연결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억압의 역사를 통해 소수민족 혹은 하위주체 간의 연대 의식을 읽어낼 만하다. 검은색과 검은색의 연대는 궁극적으로 누구나 하나의 사람으로 탄생하는 해방의 역사를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점에서 이 시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새 생명의 원천으로서 검은색을 노래하기에 빛을 발한다.검은 어둠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검은 밤이 생겨나는 것은 분명 검은 것에는 탯줄이 달려 있고 물결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네― 서안나, 〈애월, 검은 사람―자산어보(玆山魚譜) 2〉, 《애월》, 여우난골, 2023글쓴이|최호영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주로 비교문학, 사상사,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현대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