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부터 경상여자고등학교(교장 최은영) 토론 동아리 ‘아고라 시사토론반’(지도 : 김동욱 철학교사)에서 『나는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다』(주하림 지음, 돋을새김, 2017)라는 책을 읽고, 열정적인 토론을 벌였다. 잘 알다시피 징병제란 군대 복무를 의무로 규정하는 제도이며, 우리나라는 남성만이 징집 대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남녀평등 의식의 발달과 징집 인원의 감소와 같은 시대 변화로 인해 여성 징병제가 끊임없이 주장되고 있다. 이 책은 여성 징병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여성도 남성처럼 국방의 의무에 참여할 수 있을까?’,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은 평등하게 진행되고 있을까?’, ‘과연 우리 사회는 여성 징병제를 도입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지난 몇 달간 토론한 성과를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정리해보았다.
여성 징병제가 한국 사회의 이슈로 자리 잡은 계기는 1999년 군 가산점제 폐지 이후 2006년 한 남성이 제출한 헌법소원이다. 그 당시 "여성을 징병에서 제외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라는 내용이 관건이었다. 헌법소원은 남성만 징집 대상이 되는 병역법이 헌법이 정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과 거주와 학문의 자유 등 남성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헌법소원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이후 국방부 장관은 남녀평등은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합당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달성된다며 여성 징병제에 대해 선을 그었으며, 최종적으로 해당 헌법소원은 기각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우리는 먼저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는데 찬성하는 관점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반대의 관점도 제시하겠다. 마지막으로 찬성과 반대 관점을 종합하는 우리의 의견을 제안하고자 한다.
[찬성] 현재 우리 사회는 여성 징병제를 도입해야 한다.헌법소원이 기각된 이후 여성 징병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다른 국가의 여성 징병제 실시 사례를 보며 시작되었다. 노르웨이는 2013년 여성 징병제 법안을 통과시켰고, "권리와 의무는 모두에게 동일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여성 징병제 도입 목적이 성평등에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노르웨이는 2003년에 이미 상장 기업 이사의 40%를 반드시 여성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여 시행하였고, 정부 직원의 절반이 여성인 국가이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로 세계 경제 포럼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3)에서 노르웨이는 2위를 차지하였고, 여성 징병제를 시행한 이후 군에 복무한 여성의 90%, 남성의 83%가 군 복무 경험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노르웨이의 사례를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여성 징병제를 실시할 경우, 여성의 사회적 참여 촉진과 성평등 인식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여성 징병제에 반대하는 주된 근거로 여성의 신체적 약함이 자주 언급되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하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군사 훈련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약한 것은 아니다. 장교와 부사관으로 임관한 많은 여군을 보면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또한 상위 10% 수준의 높은 군번으로 임관하며 체력적인 부분이나 지성이 필요한 이론, 기술 부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여군이 상당히 많다. 사관학교 수석이나 우수 졸업생들의 다수가 여자 생도인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신체적 약함이 군 복무에 큰 장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 현재 우리 사회는 여성 징병제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
여성 징병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여성 징병제 실시가 성평등을 실현하는 주요 방법이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48년부터 여성 징병제를 시행한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자면, 여성은 주로 남성 보조나 비전투 병과를 맡고, 남녀의 군 복무 기간 차이로 인해 남성 위주의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여군은 통계적으로 8명 중 1명꼴로 성 학대, 성폭행을 경험했고, 더욱이 군대 내 성 상납 및 성매매도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성비위는 이스라엘에서 국가적인 문제로 여겨진다.비록 이스라엘 여군들이 큰 사명감을 가지고 군 복무를 하지만,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10%인 점과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83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여성 징병제 실시가 곧 성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징병됨으로써 마치 굉장히 평등한 대접을 받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투병과에서 대다수의 여군을 배제하고 있는데 결국 `진짜 군인` 대접을 받고 마지막에 영웅이 되는 것은 전투병으로 희생한 남자 군인이며 여군은 그저 보조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또다시 남성 위주의 사회가 강화된다.두 번째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여성 징병제를 반대하는 주된 근거이다. 여성은 본래 전쟁이나 군대와 맞지 않는 신체적 특성을 타고났다. 신체적 특성에 관련된 내용은 2006년 병역법 헌법소원 기각 사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일부 여성은 강인하고 우월한 신체 조건을 타고날 수 있지만, 보통 여성은 선천적으로 체력이 유약하고 남성에 비하면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정립과 반정립 그리고 우리들의 생각]찬성과 반대의 견해를 각각 살펴본 결과, 우리는 노르웨이와 이스라엘의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여성 징병제를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르웨이와 이스라엘을 보면 군 복무는 호의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한국에서 군대는 위험하고 힘든 곳이라 여겨지기에, 제도적으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할 경우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경제 포럼이 내놓은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0.68을 기록하여 전체 146개 국가 중 낮은 순위인 105위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그동안의 논쟁에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향후 결정적인 계기로 등장할 변수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및 인구절벽 사태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출산율은 0.778명으로 1명이 되지 않고 총 신생아 수는 249,186명이다. 합계출산율과 출생아 수는 대폭 하락하고 있어 저출산 추세가 악화되고 있다. 현재의 저출산 문제는 미래 병력 수급 문제로 직결될 전망이다. 한때 대한민국 국군을 표현하는 수식어인 ‘60만 대군’은 이미 2018년에 깨졌고, 2022년 기준으로 실제 국군 병력은 48만 명에 그친다. 병력 징집 연령대가 20대 초반임을 고려하면, 현재와 같은 저출산 추세로는 20년 뒤 병역 자원은 심각하게 부족할 것이다.저출산의 늪과 인구절벽 앞에 선 미래의 대한민국은 남성 병역 자원만으로 국가의 안보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도 쉽사리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군 복무에 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젠더 갈등의 관점에서 여성 징병제를 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공적인 짐을 어떻게 나눌 것이고, 우리 사회에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협의와 정책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흔히 말하듯이,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뛰어나오지만, 미지근한 냄비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죽는지도 모르고 편안하게 냄비 속에 있다고 한다. 저출산과 인구절벽을 직면하여 여성 징병제 실시 여부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숙고해야 한다. 지금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나중에 처리하자는 태도나 정치적 셈법에 따라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권모술수는 지양하고, 이제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여성 징병제를 논의해야 할 때이다.경상여자고등학교 아고라 시사토론반윤여정, 이효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