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모든 문제는 수업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모든 해결은 수업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는 수업을 통해서 가장 큰 상처를 받지만, 또한 수업을 통해서 가장 큰 위안을 얻고, 회복된다. 때때로 수업은 나 하나와 수없이 다른 섬들의 분절이 만든 고독한 섬들의 좌표 같지만 하나의 섬과 수없이 많은 또 하나의 섬들이 무한의 고리로 연결될 때 그 환희와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만들기도 한다. 회복하는 존재들의 섬에서 수업을 다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나의 수업이야기 3독일 헌법 1장 1조"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는 이 불가침의 원칙을 확인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첫 번째 시간은 두 개의 헌법 내용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몇몇 학생이 헌법개정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독일 헌법에 비해 87년 헌법이 가진 취약성은 인간존엄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분석했다. 이유는 독일 헌법이 제1원칙인 인간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면 대한민국 87년 헌법은 역시 제1원칙인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각론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독일 헌법이 모든 문제의 1원칙으로 인간존엄성을 설정했고 인간존엄성을 헤치는 모든 국가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천명한 반면, 우리의 헌법은 모든 문제에서 제1원칙이 공화국의 보존에 있고, 공화국의 유지를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은 제약될 수 있다고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헌법의 우선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물론 우리의 헌법 또한 인간존엄성을 천명하고 있지만 부차에 불과한 체제이며, 가령 이 둘의 가치가 충돌할 때 그 태도는 독일의 헌법 체제와 달리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며, 그것이 국가지상적인 관점을 소유한 87년 체제 이후의 권력이 보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다수 아이들의 답변은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정돈되거나 날카롭고 세련된 표현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두 개의 헌법이 지닌 차이를 고민하고 있었다. 인간존엄성 보다 공화국의 유지를 우선하는 헌법 이는 우리 헌법의 모태인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브레히트의 우려를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권력은 어디로 가는가?`
브레히트의 이와 같은 우려는 결국 국민의 권리로 국가권력이 되었고, 그것을 토대로 불가침의 지상적인 권력으로 행위한 독일 3제국으로 재현되었다. 그것은 오직 국가로 체현될 주권재민을 천명한 근대 헌법의 참담한 패착이었다. 아마도 그것에 대한 역사적 반성이 현행 독일 헌법이 인간존엄성을 제1원칙으로 천명한 이유일 것이다.
브레히트의 우려는 권력의 시원은 국민에게 있지만, 권력을 행위 하는 신체는 결국 국가인 까닭에, 신체가 분할 될 수 없음을 이유로 신체를 장악한 중추가 천부 권리의 신성한 담지자로 착각하는, 바로 그 전도 과정의 불분명한 해석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로 말미암아 국가의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는 87년 헌법이 우리 사회와 가장 크게 불화를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학생들은 헌법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와 그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 보였다.두 번째 시간은 헌법의 역사와 개헌에 대한 수업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피면 발췌개헌에서 87년 체제가 구축된 직선제 개헌까지. 짧은 역사에 총 9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이는 현대사가 그만큼 격동적이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개헌의 성격을 분류해보면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었다.1차(발췌개헌), 2차(사사오입 개헌), 6차(3선개헌) 7차 (유신 개헌) 개헌들은 현행권력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정부의 취약성이 임계점에 달했을 때 그리하여 정당한 방식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힘들다고 명백히 인지되었을 때 비합법적인 혹은 편법적인 방식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개헌이었다. 그 결과는 이승만 독재라는 불필요했던 체험을, 유신체제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시민에게 강권했고, 4.19와 부마항쟁이라는 살아있는 시민의 항쟁으로 매조지 되었다.5차 (국민투표개헌), 8차(국보위 개헌) 개헌은 비합법적인 쿠데타 세력에 의해 관철된 헌법개정 내용이다. 공통점은 새로운 권력을 옹위하기 위한 요소가 강했으며, 급변사태 직후라 시민의 요구가 일부 반영되었으나 본질적으로 반시민적 요소가 짙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혹독한 군사정권의 강권 통치를 체험케 했다.제헌헌법, 3차(내각제 개헌), 4차 (소급입법 개헌), 9차(직선제 개헌)는 시민의 힘으로 쟁취한 헌법들이다.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추진된 헌법은 그 적용 및 운영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가장 시민적인 헌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요한 공통점은 현행권력에 의해 추진되거나 소수 찬탈 권력에 의해 입안된 것이 아닌 시민의 광범위한 시대적 담론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해방과 공화정부 수립이라는 광범한 논의 속에서, 4·19 혁명의 시민적 염원을 실현시키는 과정 속에서, 6월항쟁의 결과 촉발된 문민 시대의 청사진 속에서 성립된 헌법은 그 시대와 조응해 시민의 삶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또한 그것은 민주주의 발전의 연대기와도 같았다.개헌의 역사를 살펴보고, 아이들은 다양한 생각을 표현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누가 주체가 되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며, 그 중심에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개헌의 논의는 광범한 시민적 논의와 시민의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방향, 민주주의 발전사의 한 획이 될 수가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라고 있고, 국가의 이익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먼저인 헌법이었으면 하는 것이었다.과연 10차 개헌은 어느 범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삶과 가치관을 담아낼 것인가? 역사 연구자로서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