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정치는 사람들의 저속한 조작이나, 부패, 권력 싸움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결정을 공동으로 내리는 것과 그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지는 삶으로서의 정치를 뜻한다.그것은 공동의 결정을 통해 공동의 행위를 강제하고 공동의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의 본의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까닭에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의 처지가 곤경에 놓여있고 이를 필연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공동의 삶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근대 자유주의적 담론에서부터 인간의 본성이 상호부조적이라는 무정부주의적 담론까지 인간이 공동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자명한 것 같다.문제는 공동의 삶의 형태일 것이다. 권력의 양도 혹은 위임을 통한 국가공동체의 구성은 그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며, 자율적인 인간들의 연대의 방식으로 권력이 배제된 공동 삶은 또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하나는 실현되었고 하나는 실험되었다. 그 진리가는 모두가 불가해하다.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근대 국가를 통한 공동의 삶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사실 뿐이다. 그것은 정치라는 공의의 퇴색이 증명하고 있다. 공동의 결정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형해화된 공동선과 권력체 욕망의 기체로 변해버린 공동 의지, 억압 기제가 되어버린 공공의 책임, 이 모든 것이 국가에 포획된 정치가 누설하는 것이다.   지젝에 따르면 정치를 올바르게 사유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국가의 속성, 확장해 사회의 속성이라 보던 편견을 벗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통되기라고 볼 수 있다. 존재하기 위해서 택한 방편이든 상호부조적인 본성이든 정치는 사회와 국가 이전의 존재 양태이며 존재 원리이다. 국가는 탁월한 방편이었으나 점점 삶의 정치와 부조응을 야기하고 있다. 국가가 공동의 결정 과정에 개인을 소외시키고 있으며, 또한 삶의 공공선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실이다. 이제 국가를 벗어난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 권력이 배제된 공동의 결정과 공동의 책임 그리고 정주하지 않는 연대 속에서 자율적 삶을 영위하는 정치의 원리를 실험해야 한다.정치란 국가에 앞서 있으며 사회에 앞서 있다. 그것은 공통되기의 원리이며 함께 살아야 하는 인간 실존의 공리이다.국가의 속성으로 포획된 `정치`를 넘어 진본의 정치를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지젝이 말하는 정치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사회적 동물이 아닌 정치적 동물로 해석하는 까닭이다.   글쓴이|이재호현직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 철학, 미학, 역사, 교육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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