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응시해야 하며, 어떤 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1년이 지나고 있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만큼이나 역사의 큰 변화를 야기할 사건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동시에 역사 연구자로서 21세기가 품고 있는 통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일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서 보여지는 것은 광기어린 푸틴만 남은 채 시간의 흐름과 지연 속에 반성의 과정 없이 관심 밖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우려되는 부분 역시 있다.역사 교사로서 현재의 전쟁을 목도하며, 수업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전쟁의 기원은 무엇이며, 전쟁이 발생시키는 변화의 양상은 어떤 것이며, 전쟁 이후 미래사회는 어떨 것인가? 여러 이야기가 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또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쟁이란 과정에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대하는 사회적 용기, 그 속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수업에서 함께 읽고자 하는 책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다. 2차 세계 대전 속 전범국가 독일인, 그러나 평화를 위해 독일의 전쟁에 저항했던 세계 시민 숄 형제의 이야기다. 모든 독일 국민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작하기를 기다린다면 그들의 만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히틀러에 대항해서 투쟁해야 한다. 너무 늦기 전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도시가 부서지기 전에, 우리의 마지막 젊은이가 피를 흘리기 전에, 이 전쟁 기계가 전진하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나치 시대 독일의 사회적 용기(civil courage)를 보여 주었던 숄 남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 하면, 이 이야기는 2차 세계 대전 속 양심적인 독일인의 이야기이다. 나치의 학살과 공포가 극에 달했던 2차 세계 대전 시기, 뮌헨 대학을 다녔던 숄 남매는 전쟁의 참상을 이해하게 된다. 독일인이었던 숄 남매는 독일 시민으로서 명예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치 정부의 광기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전쟁 기계를 멈추게 하려면, 정치적 힘이 없는 보통의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 나치에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숄 남매는 비폭력적인 시민 저항 운동인 백장미단 운동을 펼쳐나갔고, 전단을 통해 독일인들의 각성을 호소하였다. 숄 남매는 게슈타포에 의해 붙잡혀 사형을 받았지만, 그들의 정신은 양심 있는 독일인들과 세계 시민들에게 중요한 울림을 주게 된다.다음으로 나누었으면 하는 이야기는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1차세계 대전이 끝이 났지만, 여전히 제국주의의 광포한 지배가 이루어지던 시기, 식민지 민중의 사회적 용기에 대한 이야기이다.1919년 3월 1일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적 용기(civil courage)를 보여준 또 하나의 세계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자들, 정치적 힘을 가지지 않았던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불의에 항거하여 일어섰다. 조선의 인민을 쇠락한 봉건국가의 무기력한 신민들이라 생각했던 일본 제국,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용기를 신뢰하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엘리트들에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이기에,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쉬운 것이라 여기면 곤란하다. 그것은 군사 국가의 광폭한 폭력과 공포를 극복한 결단이며, 그 결단이 만든 연대의 힘이기에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며, 무척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숭고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20세기가 경험했던 두 개의 거대한 전쟁 전쟁을 종식 시켰던 근원적 힘, 즉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만든 사회적 용기는 21세기에도 존재했다.이와 비슷한 일들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푸틴의 필연적 착오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적 용기에 대해 무지했거나 무시했기에 발생하고 있다.전쟁 초기 자신만만했던 러시아의 계획이 우크라이나의 사회적 저항이 예상보다 거세게 일어나면서 무너졌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나폴레옹과 빌헬름 2세, 히틀러 모두 그러했다. 푸틴에게 있어 부패하고, 허약한 국가라 간주되었던 우크라이나의 보통의 사람들이 보여준 사회적 용기는 그의 계산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했지만 그는 간과했던 것이다.더 주목할 것은 러시아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용기(civil courage)이다. 보통의 평범한 러시아인들이 용기를 내어 푸틴의 선택을 비판하고 있다. 푸틴과 전쟁 기계가 된 조국 러시아를 멈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연대하고 있다. 그것은 공포를 극복한 용기의 힘이다. 이 전쟁을 종식 시킬 궁극적 에너지는 바로 그 힘의 결집이 될 것이며, 그 힘은 세계 시민과의 연대로 이어질 것이다.전 세계인들도 조금은 다른 듯 하지만, 그 본질은 같은 두 맥락의 사회적 용기에 연대하고 있다. 전쟁을 멈추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 당사국들의 평범한 사람들이 용기 내어 반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의 호응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주검을 눈앞에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평화고, 모든 아름다움이 뒤집히는 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의 반대가 평화다. 모든 아름다움이 뒤집히지 않고 간직될 수 있는 상태가 평화다`- 반레,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중베트남 시인 반레의 말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은 평화에 대한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움이 뒤집히지 않고 간직될 수 있는 평화.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요즘 평화란 무엇인가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난해 아이들과 했던 수업에서 아이들이 이야기 했던 평화에 대해서도 다시 찾아보게 된다. 그 속엔 아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모든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모든 아름다움이 뒤집히지 않고 간직될 수 있는 상태. 그것을 위해선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3월 수업이 시작할 때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용기와 그 용기의 원천인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바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그때 이 전쟁이 끝이 났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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