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포항시 복합문화센터 덕업관서 강연회 약 200여 명 참석이날 오전 「최초 동학 조직 안내 표지판 설치 및 기념식」 개최“해월 선생 태어난 곳은 경주지만, 성장하고 활동한 곳은 포항” (사)동대해문화연구소(이사장 이석태)는 지난 18일 오후 2시 포항시 남구 복합문화센터 덕업관 3층 대강당에서 포항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포항사람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애와 사상’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회에 앞서 이날 오전 11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매산리에서는 동학 교주인 수운 최제우선생이 동학의 최초 조직인 접주제를 실시한 곳이자 2대 교주 해월이 젊은 시절 머물며 동학 조직을 체계화 했던 곳으로 ‘최초 동학 조직 안내 표지판 설치· 기념식’이 열렸다. 해월 최시형(1827∼1898)은 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조선 말 변혁의 시대에 동학을 민중 속으로 더 넓게 전파했으며, 제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에게 교주를 물려주기까지 34년간 동학을 이끌며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다. 이날 강연회는 동학 연구 권위자로 이름 높은 윤석산(75) 한양대 명예교수가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관련해 PPT 자료를 통해 1시간 30분가량 강의를 진행했다. 특히 선생이 젊은 시절을 포항에서 보내며 동학의 체계를 확립한 것에 대해 윤 교수는 “선생이 태어난 곳은 경주시 황오리이지만, 고향은 포항이다. 본래 부친은 포항 사람이고, 어머니는 경주 사람이다. 조선 이전의 경우 출산을 친정에서 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친정인 경주에서 해월 선생 태어난 것이다”며 “포항에서의 삶은 바로 해월 선생의 전 생애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동학 교단을 전국 조직으로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논문은 조실부모한 최시형이 여동생과 함께 15세 무렵에 신광으로 온 이유도 그곳이 고향이자 친척이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매산리와 신광면 마북리, 기일리, 검등골 일대에는 선생의 유적이 실재하고 숱한 스토리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해월 최시형은 젊은 시절 머슴살이 가운데서도 포항 신광면에서 기계천을 따라 경주 현곡의 수운 최제우가 깨우침을 얻었다는 용담정까지 찾아가 공부와 득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교주를 맡은 후에는 동학 경전을 집대성해 편찬했고,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로 요약되는 ‘삼경사상(三敬思想)’을 정립했다. 이는 3대 교주 손병희의 삼일운동 정신으로 이어졌고,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도 고스란히 계승돼 있다. 이석태 동대해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이번 강연회를 통해 단군 이래 최대의 혁명으로 평가받는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최시형 선생이 포항 사람 임을 충분히 조명한 만큼 선생의 정신과 생애를 기리는 일에 포항시민들이 앞장서야 한다”며 “앞으로 구성될 가칭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사업회』에 시민 여러분들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사)동대해문화연구소는 1994년 창립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연구단체로 「포항시 매장문화재 지표조사(오천읍, 대송면, 흥해읍지역)」, 「포항의 봉수대 조사」, 「포항의 고인돌을 위한 지표조사」, 「포항시 금석문해제 용역보고서」, <논문집 : 동대해문화연구 1~14권> 등을 발간했으며, 2019년에는 해월 최시형 선생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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