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하려는 작업의 중심은 옛 어른들이 전승해 온 산에 관한 명칭과 그분들의 근세 생활사를 채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옛 산촌 어른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들이 산을 보던 태도는 지금 도시인들 것과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를 경우 지금의 인식 틀로써는 저분들이 하는 말을 본뜻대로 이해하기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는 이번 작업이 목적대로 수행될 수 없습니다. 지금 방식으로 옛 이야기를 대해서는 오히려 본뜻을 왜곡시켜 역사에 누를 끼치는 지경까지 갈 위험성마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배우려는 자세로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그분들은 과연 어떤 눈으로 산을 대했던지, 그것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는 저 산촌 어른들과 시점(視點)을 맞추고 눈높이를 같이 한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터무니없이 스스로 산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는 상황만 꼬이게 할 뿐입니다. 곳곳에서 적잖이 생겨 있는 혼란들의 원인도 저것일 터입니다. 저래서는 전래의 땅이름과 이야기를 온전히 수습할 수 없습니다. 옛 산촌 어른들과 현 도시인들이 가진 차이는 여럿입니다.첫째 차이는, 산을 보는 태도의 차이입니다. 옛 어른들은 종합적으로 산을 보는 반면 현대인들은 분석적으로 산을 대합니다. 옛 어른들은 한의학적으로 산을 대하지만 도시인들은 양의학적으로 산을 해부하려 듭니다. 요즘 등산객들은 산과 산, 봉우리와 봉우리, 봉우리 중에서도 각 부위는 그것대로, 그렇게 지형을 세분해서 파악하고 싶어 합니다. 분석하기부터 배우는 서양식 교육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봉우리에는 봉우리대로, 재에는 또 그것대로, 골짜기에는 골짜기대로 각각 다른 이름이 있어야 성에 차 합니다. 그러나 옛날엔 달랐습니다. 옛 어른들은 어디까지가 무슨 봉우리이고 어디서부터는 어느 산인가 하는 식의 분별심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낱개의 산덩이 또한 봉우리 재 계곡 등으로 세세히 나누지 않고 통째 한 단위로 인식했습니다. 그냥 ‘신림이’ ‘물불이’라 해서 골짜기와 봉우리를 합쳐 하나로 지칭하곤 했습니다. ‘꽃밭내기’ ‘청송내기’ ‘약물내기’ 등등도 그런 이름들입니다. 그래서 현대 도시인들은 산촌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땅이름을 알아듣기가 매우 힘들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관념으로 산을 파악하는데서 시작된 인식차이의 결과입니다. 둘째 차이는 산을 보는 시점(視點)의 높이입니다. 옛 어른들은 낮은 부분을 중심으로 산을 보고, 지금 도시인은 높은 봉우리 꼭짓점을 출발점 삼아 산을 봅니다. 도시인들의 저런 태도는 높이 오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서 유발될 터입니다. 그래서 높은 데서 아래로 내려다보려 합니다. 그 높은 것에 깃발을 꽂은 후 그것을 주봉으로 삼아 하부 구성을 파악하려 드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높은 산이라야 높게 쳐 주고, 높은 봉우리라야 우선시 합니다. 반대로 옛 어른들은 낮은 데 서서 낮은 것을 우선해 보려 했습니다. 산에 가는 목적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었고, 그러는 데는 낮은 곳이라야 유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골짜기와 나지막한 등성이 등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형은 저런 옛 어른들로부터 외면될 수도 있었습니다. 놀랄 만큼 높은 봉우리일지라도 이름조차 없이 방기될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삶에 필수적인 산이 아니어서 구태여 가리켜 보일 일이 없는데 뭐 하러 굳이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반면 옛 산촌 어른들은 동네와 가까운 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상 살이와 밀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은 산덩이의 여러 지형지물들에는 갖가지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전설이나 삽화(揷話)들도 매우 다양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이게 관심도를 반영하는 증거입니다. 저렇게 바라다보는 바가 엇갈리다 보니, 옛 산촌어른들과 현대 등산객들 사이엔 소통이 더 어려워집니다. 현대인들이 알고 싶은 것은 봉우리 이름이지만 산촌어른들에겐 거기 맞춰 내어줄 답이 없습니다. 옛 어른들은 골짜기 이름으로써 산을 나눠 인식하는데 능숙하나, 현대인들에겐 그 말에 대한 이해능력이 없습니다. 현대인은 등산의 필요성에 매달리는 반면, 옛 산촌 어른들은 산에 있을 삶의 재료에 눈길을 고정시켰던 게 저런 엇갈림의 원인입니다. 현대인들은 산 정상을 중시하지만 옛 어른들은 골짜기와 등성이에 포인트를 뒀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산의 단위(單位)를 보는 눈마저 서로 다른 경우까지 엿보입니다.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도시인들은 덩어리 단위로 산을 나누는 반면, 옛 산촌 어른들은 근접성을 따라 산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차이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분석적 사고에서는, 서로 맞붙은 산덩이라도 그 사이에 물길이 지나가면 서로 다른 산으로 분간합니다. 물길이 가름선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산이 매우 높아 하체인 골짜기 부분과 상체인 정상부가 서로 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둘을 동일체로 인식합니다. 옛 산촌 어른들은 그 반대였습니다. 하나의 산덩이라도 그것의 하체와 상체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둘을 별개인 듯 나눠 봅니다. 반면 물길에 의해 서로 다른 산덩이로 갈려 있는 것이라도 인접했으면 하나의 산덩이로 봐 버립니다. 물길을 산덩이 가름선이 아니라 오히려 산 단위를 형성하는 중심축으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저렇게 되면 지금 눈으로는 이해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분명 하나의 산덩이인데, 그게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게 그것입니다. 골짜기는 골짜기대로 별개 이름의 산으로 분간돼 불리고, 산의 상체는 상체대로 별개 산으로 나누어져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또 다른 상황이 덩달아 생겨나기까지 할 것입니다. 물길 건너 산은 분명 별개 산덩이인데도 그 아랫자락만은 이쪽 산과 하나의 이름 아래 지칭되는 게 그것입니다. 두 산이 뒤섞여 어느 게 어느 것이라는 이야기인지, 현대의 눈으로는 도무지 분간 못할 상황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옛 어른들은 산을 골짜기 단위로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골짜기를 단순한 골짜기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산으로까지 구획성 높여 바라다 봤다는 뜻입니다. 저렇게 해서 현대 도시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어진 지명의 한 사례가 포항의 ‘내연산’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 도시인들이 지금 ‘내연산’이라 생각하는 그 산 상체를 현지 어른들은 내연산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동대산’이라 했습니다. 지금 저 산의 핵심이라 파악하는 보경사 뒷산 상체를 고려시대 기록은 내연산이 아니라 ‘신귀산’이라 지칭해 놓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 인식틀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다시 살피겠습니다. 옛 어른들과 지금 도시인들의 산 인식 차이가 저렇게 크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래서는 현대 도시인들이 옛 어른들의 말을 얼른얼른 알아듣기 불가능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산 이름을 놓고 하는 대화에서 특히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옛 어른들의 산에 대한 인식을 먼저 공부하고 나서 산으로 들어가는 건 필수적입니다. 그러지 않고 엇갈린 시선을 방치하면 또 다른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옛 산촌 어른들이 잘 아는 골짜기 이름은 이어 받을 후손이 없어 사라져 가게 되는 반면, 현대인이 알고 싶은 봉우리 이름은 여전히 없는 채로 그냥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산이 온통 텅텅 비게 될 형국이라 해야겠습니다. 흔히 도시인들이면 누구 없이 산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산에 자주 가고 잘 아는 사람들인 양 착각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산을 잘 알았던 이들은 옛 산촌 어른들이었습니다. 이농(離農)과 도시화가 시작되기 전의 그때 그 어른들은 들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아마 50년 전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확실히 그런 시대였을 것입니다. 각종 나물과 뿌리와 열매들을 거둬 반찬하고 양식하려면 산에 가야했습니다. 연탄이 일반화되기 전이니 땔감 또한 당연히 산에 가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비료가 없던 때여서 농사지을 퇴비거리로도 산의 풀을 베야 했습니다. 상당수 산촌 사람들에게 현금을 마련할 길이라곤 깊은 산 속에 막을 치고 살면서 숯을 구워 파는 것밖에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산 가치에서 논보다 산이 나은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그러니 산에 있는 각종 지형지물(地形地物) 이름도 필요한 건 저 분들이 이미 다 지어놨을 수 있습니다. 산을 공부하려면 저 분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듣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박종봉 투데이포항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