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산을 편하게 생각합니다. “산이 산이지 뭐 별 거 있겠느냐”는 식입니다. 워낙이 모두들 산 가까이서 살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등산인구가 는 뒤에는 더욱 그런 듯합니다. 산에 가 본 적 없는 사람까지 덩달아 그런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대부분은 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등산기술을 가르치는 등산학교는 있어도, 산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는 학교는 못 봤습니다. 산에 관한 연구가 국가 차원에서 공식 진행된 적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산에 관한 지식이 공통되지 않고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산을 살피러 나서기 전에, ‘우리’의 인식부터 조율해야겠습니다. 각자 서로 다른 엉뚱한 걸 바라보고 있어서야 대화에 진척이나 성과가 있겠습니까. 작고 기본적인 것에 대한 인식부터 확인해 나가겠습니다. 아래 이야기 대부분은 필자가 산을 현장답사하면서 혼자 정리한 것입니다. 배운 게 아니라서 정설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 맞는다고 주장하려는 생각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이렇게 발제라도 해 놓는 사람이 있어야 토론할 자료라도 생기고, 그래야 앞으로 더 발전시킬 길이 열릴 수 있을 것 같아 용을 써볼 뿐입니다. 1. 개념 정리 산의 기초 단위는 ‘봉우리’일 것입니다. 봉우리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소자(素子)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단락이고 기본 지형인 것입니다. 봉우리는 한자로 대개 ‘봉’(峰)이라 표시됩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강’(崗)이나 ‘잠’(岑) 등의 한자말을 쓰는 경우도 보입니다. 포항에서는 岑(잠), 청도에서는 崗(강)이 흔한 식입니다. 저렇게 지칭된 지형에는 크게 높지 않은 구릉 같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매우 높아 ‘산’으로까지 불리는 지형도 있습니다. 봉우리가 단락 지어지는 경계는 산촌 어른들에 의해 ‘잘록이’ 혹은 ‘목’ 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잘록한 곳이라 해서 ‘잘록이’라 하고, 그 모습이 동물의 목 부분을 닮았다고 해서 ‘목’이라 하는 것입니다. ‘목’은 발음하기 쉽게 ‘이’를 붙인 뒤 연음시켜 ‘뫼기’ ‘미기’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등산인들 사이에서는 저 잘록이가 주로 ‘안부’(鞍部)라 지칭됩니다. 잘록한 모습을 안장 얹는 말의 허리 모습에 비유한 셈입니다. 그런 중에 잘록이를 ‘재’라고 규정한 등산 이론서도 보입니다. 한자로는 岾(재)라 쓰는 그 재입니다. 이 책에서는 저 용어들을 섞어 쓰되, 간편하게는 ‘재’라고 호칭토록 하겠습니다. ‘재’의 뜻을 두고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기에 다시 점검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봉우리가 다른 봉우리와 이어지면 보다 큰 영역으로 확장될 터입니다. 그럴 때는 봉우리와 재가 교대로 나타나서 봉우리~재~봉우리~재… 하는 순으로 연결됩니다. 저렇게 봉우리들이 이어져 형성한 것을 ‘산줄기’라 부릅니다. 봉우리는 ‘산줄기’로 이어져 하나의 ‘산’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우리는 저 혼자서도 독립된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산과 봉우리가 다른 시각에서 성립된 개념이라는 뜻입니다. 봉우리는 하나의 형태를 가리키고, 산은 하나의 권역(圈域)을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 ‘산’과 ‘산줄기’도 다른 시각에서 출발한 개념일 터입니다. 산은 그것의 구획성에 주목한 것인 반면, 산줄기는 이어지는 양상을 중시해서 바라본 개념인 것입니다. 어느 것이 상위개념이고 어느 것이 하위개념이니 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산줄기가 한 산의 권역으로 묶일 수 있습니다. 지리산에 수많은 산줄기들이 포괄돼 있는 게 예입니다. 팔공산에도 숱하게 많은 장대한 산줄기들이 있습니다. 반면 대단한 산들이 하나의 산줄기 안에 묶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이라는 산줄기에는 지리산뿐만 아니라 백두산까지 포괄돼 버립니다. 산은 일정한 권역으로 마감되지만 산줄기는 끝없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할도 다릅니다. 산은 하나의 생활권을 구획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산줄기는 물길을 갈라 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줄기는 태생적으로 ‘분수령’(分水嶺)입니다. 옛 어른들이 ‘山自分水嶺’(산자분수령)이라며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의 저 ‘산’은, 개별 산덩이가 아니라 바로 이 산줄기라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 저렇게 본령이 다르다 보니, 산과 산줄기의 격도 각각 다른 기준에 의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산은 일단 높고 덩치가 커야 주목받기 쉽습니다. 자그마한 놈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높이가 높으면 덩치가 커지고 그러면 영향권역도 확대됩니다. 반면 산줄기에서는 높낮이가 아니라 길이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높고 비대해도 오래 이어가지 못하면 격이 떨어집니다. 반대로 주위의 다른 산줄기보다 낮고 비실비실해도 더 오래 이어져 가면 격이 높아집니다. 이유는 물 가르는 기여도 차이입니다. 산줄기의 격은 물 가름 능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어 가는 것을 본성으로 한다는 점에서 산줄기는 ‘山脈’(산맥)이라고 한역해 부르면 느낌이 잘 살아날 것입니다. ‘맥’이라는 게 그런 어감을 가지면서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맥’이란 용어는 이제 쓰기가 곤란하게 돼 있습니다. 일본제국의 학자가 우리 땅을 파먹기 위해 땅 밑의 지질 흐름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저 용어를 악용해 오염됐다 하기 때문입니다. 지질이 이어져가는 모습이면 ‘지맥’(地脈)이라 하는 게 근사하겠는데도 ‘산맥’이라 해 버렸다는 뜻이겠습니다. 저들이 만들어 놓은 산맥 체계 중 대표적인 것은 ‘태백산맥’입니다. 우리 옛 어른들이 파악했던 백두대간 강원도 구간과 낙동정맥의 상당 부분, 그리고 그 주위의 다른 산줄기들을 이어 붙인 흐름에 상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땅 위 산줄기에는 저런 모습을 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산줄기는 강을 만나면 끊기지만 저것은 도중에 강마저 마구 뛰어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판주의자들은 “태백산맥은 산줄기가 아니다”고 못 박습니다. ‘지질줄기’라는 것입니다. 사정이 저렇다 보니 사람들은 이제 산줄기를 ‘산맥’이라 하기를 꺼려합니다. 저들이 지맥 흐름을 따라 구축해 놓은 ‘산맥 체계’와 혼동될 우려가 있다고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주의자들은 ‘산맥’ 대신 ‘산경’(山徑)이란 용어를 씁니다. ‘산경’은 산줄기를 뜻 그대로 한자화한 말입니다. 이미 옛날부터 쓰여 온 전통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산줄기와 관련해서는 현재 쓰이는 용어들에도 뒤섞임이 있습니다. 산줄기의 특성을 다시 살펴가며 검토하겠습니다. ‘산줄기’ 혹은 ‘산경’은 소의 등을 닮았습니다. 윗부분이 평면 아닌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게 닮은 점입니다. 오르내림 없이 평평하면서 높고 길게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우배등’(牛背嶝)이라 하던 옛 어른들 말씀이 이해됩니다. ‘소 등 닮은 등성이’라는 뜻이겠습니다. 저런 모습을 한 산줄기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 물은 틀림없이 어느 한쪽으로 흘러내려야 합니다. 산줄기에 물 가르는 기능, 즉 분수(分水)기능이 태생적으로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보기에 펑퍼짐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위에는 물을 갈라붙일 정도로 모가 진 기능이 갖춰져 있는 것입니다. 저게 연상시키는 게 논물의 경계를 가르는 논두렁입니다. 이건 산에 있는 것이니 ‘산두렁’이라고 대비시키면 좋겠습니다. ‘두렁’을 한자로 바꾸면 ‘稜’(릉)이 됩니다. 산두렁을 통째 한역하면 ‘山稜’(산릉)이 되겠지요. 물 가르는 기능을 중시해 산줄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산두렁’ 혹은 ‘산릉’이겠습니다. 저 산두렁의 몸체에서 가장 높게 이어져 가는 부위는 ‘능마루’라 하면 되겠습니다. 이어져 가는 산덩이 줄기를 통째 이르는 말이 ‘산줄기’‘산경’이라면, ‘능마루’는 산줄기 중 제일 높은 부분들의 연속체이겠습니다. 능마루는 ‘산마루’라는 말로 바꿔 써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산마루’는 ‘산등성마루’ ‘등성마루’의 준말이고 한자로는 ‘山脊’(산척)이라 표기한다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바는, ‘산마루’라 하니 산줄기가 아니라 어느 한 산의 마루만 말하는 것처럼 어감에 한계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산마루 연결양상은 선(線)처럼 보일 수 있겠고, 그림 그려도 선으로 나타나겠습니다. 이건 ‘산마루선’ 혹은 한자화해서 ‘산척선’ 혹은 ‘산릉선’, 줄여서 ‘능선’이라 하면 될 듯합니다. 우리말 애호가들은 저 능선을 ‘마루금’이라 풀어쓰기도 합니다. 대찬성입니다. 저렇게 우리말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존경할 일입니다. 그럭저럭 개념들 사이에 구분이 서기 시작했습니다. 산줄기-산두렁-능마루-마루금 사이에 대비가 이뤄졌습니다. 한자로는 산경(山徑)-산릉(山稜)-산척(山脊)-능선(稜線)으로 대비되겠습니다. 저렇게 다른 개념들인데도 사람들은 저것들을 뒤섞어 씁니다. 산줄기 즉 산두렁을 ‘산릉’이라 하지 않고 ‘능선’이라 해 버리는 것입니다. 안 될 일입니다. ‘능선’을 ‘마루금’이란 말로 바꿔 대입하기만 해도 잘못은 금방 드러납니다. 산줄기를 능선이라 하고 마루금이라 한다면, 결국 산줄기=마루금이라는 얘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줄기’가 ‘금’과 같아졌습니다. 아차! 싶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능선’은 ‘마루금’이라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선 혹은 금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주체는 마루금이 아니라 ‘산마루’‘능마루’입니다. 그리고 능마루는 산줄기(山徑)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산줄기는 실재하는 지형이고, 능마루 산마루는 그 중 제일 높은 부위이며, 마루금(능선)은 능마루가 보여주는 모습(금․선)이거나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본질이 다릅니다. 이걸 구분하지 않고 우리말을 우리 스스로 아무렇게나 쓰면 그 망가지는 것을 다른 누가 막아 주겠습니까. 저런 혼란은 어감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한자말의 모호성이 초래했을 수 있겠습니다. 어감이 약하다보니 언어감각도 마비된다는 뜻입니다. 산줄기는 상대적인 관계에서 일단 ‘원(元)산줄기’ 혹은 ‘주간(主幹)산줄기’와 ‘가지산줄기’로 대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산줄기가 있으면 거기서 갈라져 가는 산줄기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산줄기’라 할 때의 ‘가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사전은 안내합니다. 하나는 나뭇가지, 다른 하나는 ‘원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한자로 바꿔 쓰면, 첫 번째 것은 ‘枝’(지), 두 번째 것은 ‘支’(지)에 해당할 것입니다. 支의 어감은 그걸 실용하는 단어를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겠습니다. 본사 아래 있으면서 반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단위를 ‘支社’(지사)라 하는 게 대표적 용례입니다. ‘本局’(본국) 아래 브랜치는 ‘支局’(지국)이라 하지요. ‘주간산줄기’는 글자 수가 같아져 ‘가지산줄기’에 대비시키기 좋고 그래서 기억하기도 유리한 이름인가 합니다. 다만 ‘幹’(간)은 그 자체로 줄기 혹은 산줄기라는 뜻을 가져, 주간산줄기라 하면 결국 겹말이 되는 면이 없지 않은 게 단점이겠습니다. 하지만 겹말이란 게 악센트를 주는 효과는 가졌으니 효용성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원산줄기와 가지산줄기는 한자식으로 바꾸면 ‘主脈’(주맥) 대 ‘支脈’(지맥)이 될 수 있겠고, ‘主稜’(주릉) 혹은 ‘본릉’ 대 ‘支稜’(지릉)도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간산줄기와 가지산줄기, 주릉과 지릉, 주맥과 지맥이 고착된 개념은 아닙니다. 어느 산줄기의 가지산줄기인 것이 다른 산줄기의 원산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산줄기-가지산줄기 대비를 여러 단계에 걸쳐 해 나가게 되면 결국엔 1차 산줄기, 2차 산줄기, 3차 산줄기… 하는 관계로 복합화 될 것입니다. 산줄기에도 선후(先後)가 있고 조손(祖孫)이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저런 관계를 파악해 250여 년 전 옛 어른이 사람가문의 족보처럼 만든 것이 ‘산경표’(山徑表)라는 저술입니다. 거기에서는 어느 산에서 산줄기가 갈라져 나가 어느 산으로 연결돼 가는지가 대를 이어 파악됩니다. 저 산경표는 지난 2004년에 ‘신산경표’라는 새 저술로 업그레이드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산을 사랑하는 어떤 독지가가 쓴 저 역저(力著)는,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든 1대 25,000 국가기본도에 이름이 등재된 모든 산을 포괄했다고 합니다. 산줄기가 이어져 가는 모습을 족보가 아니라 그림으로 그린 것은 ‘산줄기 그림’이 되겠습니다. 한역하면 ‘산경도’(山徑圖)가 됩니다. 산경도는 요즘 일반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등산 안내서들이나 간혹 그려 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개들 잘 아는 ‘대동여지도’는 철저히 산경도입니다. 산줄기로써 모든 지형 판단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지도들은 ‘고지도’(古地圖)라 분류됩니다만, 그림 그리듯 여기저기 지형지물들을 나열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산줄기 그림을 그린 고지도는 매우 발전한 형태입니다. 대동여지도는 거기다 축척까지 가지런히 해서 거리를 감지할 수 있도록 했으니 더욱 진보된 형태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산줄기그림은 우리 지역 생활사 연구에 가장 기본 되는 자료라고 확신합니다. 저 그림이 없으면 수많은 골짜기와 고개 이름이 표기될 수단이 없어집니다. 산줄기가 그려져야 그것들에 의해 형성되는 골짜기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산줄기가 그려져야 그걸 넘어 다니는 고개가 표시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서구식 ‘지형도’(地形圖)를 들여다보면 저런 사정이 쉽게 이해됩니다. 지형도는 그야말로 ‘땅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수단은 등고선(等高線)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지형도는 각종 지도의 모본이 됩니다. 그러나 서구에서 유래한 지형도 제작법에서는 산줄기 흐름이 별도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자동차도로와는 정반대 상황입니다. 도로는 본래 너비보다 몇 배나 두껍게 과장돼 표현되지만 산줄기는 흐름조차 표시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렇게 산줄기를 간과하다 보니 서구식 지도 제작법에서는 산줄기 위에 있는 고개나 재(岾)를 집어서 표기할 부호조차 개발돼 있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필요 없는 일이었던 게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저런 서구 지형도와 반대입니다. 거기에서 주인공은 산줄기입니다. 다른 것은 구석지게 표시되고 심지어 도읍들조차 조그맣게 그려지나, 산줄기들은 굵고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실제 크기로 봐서도 이게 실상에 더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산줄기 지도가 그려지지 못하면 지명조사가 수없이 시행돼도 별로 소용이 없어집니다. 대상 지형을 콕 집어 소통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 이름을 조사해 놔 봐야 그게 어느 것의 이름인지 제대로 알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동일 지형에 대해 엇갈린 증언들이 나와도 조사자 자신부터 그걸 분간해 낼 수 없으니 뒤섞어 채록해 두기나 함으로써 오히려 혼란을 부르는 결과를 빚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산줄기 그림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무엇보다 산의 부피를 표시하지 못하는 게 큰 한계입니다. 등고선 지형도는 대상 산줄기가 얼마나 뚱뚱한지 충분히 잘 반영해 보이지만, 산경도는 어떤 산줄기이든 기껏 한 선으로밖에는 그려 보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등고선 지형도는 그야말로 실제 땅 모양을 그린 지형도이고, 산경도는 산줄기를 중심으로 그린 개념도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다시 보건대 산줄기 그림은, 기본적으로 산줄기가 흘러가는 방향과 길이를 중심으로 표시합니다. 만약 부피 혹은 너비까지 다 그리려면 그림 면적의 대부분이 산줄기로 뒤덮일 것입니다. 그 사이사이의 골짜기 혹은 물줄기가 차지하는 면적이라 해야 실낱 굵기에도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저래서는 저 그림이 제 역할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정리하거니와, 산경도에서는 산줄기가 뚱뚱한 부분이나 홀쭉한 부분이나 모두 같은 굵기의 선으로 그려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산줄기 지도만 들여다봐서는 실제 현장에서 매우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엄청나게 넓은 면(面)이 지도에선 단 하나의 선으로 나타나 있으니 서로 맞춰 보기가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림으로 보면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가 매우 벌어져 그 사이의 골짜기가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데, 현장에선 두 산줄기가 딱 붙다시피 해 골짜기 출구를 구분조차 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반면 그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림과 달리 갈수록 넓어져 마치 별천지가 펼쳐지는 듯할 때도 있습니다. 산경도의 저런 단점에 속지 않으려면, 가지산줄기들 끝부분에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끝부분으로 갈수록 부채처럼 퍼져 펑퍼짐해지는 특성을 지녔음에 유의해 가며 산경도를 읽으라는 뜻입니다. 강조하거니와, 산줄기 그림에선 그 끝자락을 하나의 선으로 보지 말고 면으로 넓혀서 봐야 현장과 얼추 맞아 들어갈 것입니다. 또 보다 효율적으로 저런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지형도를 함께 활용하는 것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포항․경주 권역에서는 특별히 주의해야 할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는 특이하게 잘록이뿐 아니라 봉우리마저 ‘재’라 부를 때가 있는 게 그것입니다. ‘하늬재’ ‘설분재’ ‘장구재’ ‘수꾸재’ ‘질등재’ ‘꼰들재’ ‘말봉재’ ‘수박재’ ‘선상재’ ‘갓재’ 등등 ‘재’라는 말이 붙은 봉우리 혹은 산덩이가 숱하게 나타납니다. 봉수대가 있던 봉우리는 봉수재>봉우재>봉오재>보재 등으로 변음돼 지칭되기도 합니다. 예비지식 없이 포항 산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겐 가장 혼란스런 상황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포항에서는 무슨 ‘재’라는 명칭이 나오면, 그게 잘록이인지 아니면 봉우리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그게 봉우리라면 ‘재’라는 말 자리에다 ‘산’이란 말을 대입해야 널리 이해되고 소통되기 쉽습니다. ‘설분산’ ‘장구산’‘수꾸산’ ‘질등산’ ‘꼰들산’ ‘말산’ ‘수박산’ ‘갓산’ ‘봉수산’으로 현대화-일반화해야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포항에서는 어쩌다 저렇게 봉우리를 재라고 부르게 됐을까요? 일 년 간 포항 땅을 저인망식으로 살피고 나서 나름대로 추리한 바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는 산줄기 중 낮은 곳을 가리킵니다. 잘록이가 그것입니다. 잘록이 중에서도 그 산줄기를 넘어 다니는 길이 난 곳은 더욱 공고히 ‘재’라는 명칭을 얻어 갖고 있기 일쑤입니다. 저럴 때는 ‘재’가 ‘고개’와 비슷한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예부터 ‘재’가 저런 잘록이나 고개만 가리키던 말이었던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높이 쌓은 성벽을 ‘재’라 해서, ‘城’이란 한자를 현대 훈으로 ‘재 성’, 옛말 훈으로 ‘잣 성’이라고도 한다기 때문입니다. 저럴 때의 ‘재’는 낮은 잘록이와는 전혀 다르게 성벽이나 산줄기 같은 높은 장벽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嶺’이란 한자도 ‘재 령’으로 읽는다 합니다. 그리고 저 한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뜻에는 몇 가지가 나옵니다. 고개를 의미하는 재가 하나, 높은 산줄기 자체를 가리킨다는 게 두 번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째로는 산꼭대기를 가리키기까지 한다고 돼 있습니다. 저 풀이를 들여다보노라면, ‘嶺’ 또는 ‘재’는 본래 고개가 아니라 높은 산줄기를 가리켜서 ‘城’과 상통하는 글자였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뇨’라는 시조 구절 속의 ‘재’ 역시 이런 높은 산줄기를 말하는 것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보면 ‘재’에는 본래 세 가지 용법이 있어서, △‘산줄기가 낮아진 잘록이’를 가리킬 때는 넘어 다니는 고개라는 뜻에서 ‘재’라 하고, △높은 산줄기를 가리킬 때는 그게 높은 성 같다고 해서 ‘재’라 불렀으며 △봉우리 또한 ‘재’라고 지칭했던 듯합니다. 포항에서 봉우리를 ‘재’라고 하는 것이 세 번째 경우에서 유래했을 수 있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 포항에서 또한 ‘재’가 ‘고개’와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로 확정돼 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우리가 ‘재’라 불리게 된 데는 이 지역에 독특한 산줄기 모습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리해 가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은 ‘산줄기를 횡단해서’ 이어집니다. 그럴 때 산줄기를 횡단하는 지점으로는 힘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는 잘록이가 선택됩니다. 산줄기 흐름이 낮아진 지점이 그것입니다. 그게 흔히 말하는 ‘재’입니다. 저러한 ‘재’는 오르내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반대로 높아진 지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지에서 출발해 오르고 평지로 내려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럴 때 횡단하는 높은 지점은 ‘고개’로 불립니다. 이렇듯 ‘재’와 ‘고개’는 반대되는 내면을 가졌을 수 있어 보입니다. ‘재’는 봉우리의 입장에서 낮은 곳을 가리키는 것이고, ‘고개’는 평지의 입장에서 높은 곳을 가리킨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둘은 동일한 지형을 가리킵니다.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명칭만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다보니 ‘재’와 ‘고개’는 흔히 동일시됩니다. 실제로도 같은 지형이니 ‘산줄기를 횡단할’ 때는 그렇게 한들 문제될 것도 없겠고요. 그러나, 산줄기를 횡단하지 않고 ‘종단’하게 되면 상황이 급변합니다. 종단한다는 것은, 산마루를 이어 걷는다는 뜻입니다. 저럴 경우엔 봉우리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게 바로 ‘넘어야 할 고개’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본래의 ‘재’는 횡단할 때의 ‘평지’에 해당하는 낮은 곳으로 위상이 낮춰지겠지요. 저렇게 종단하는 사람에겐 봉우리가 무심결에 ‘재’로 인식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에 ‘산줄기를 종단하’게 되겠습니까? 능마루를 걸어서 산줄기를 답사할 때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근래 10여 년 사이 널리 일반화된 일입니다. 산줄기를 걸어 우리 땅을 답사하는 산악회들이 매우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포항에서는 저런 일이 옛날부터 일상생활의 일부로 행해져 온 듯합니다. 산줄기를 넘는 게 아니라 그것 위를 걸어서 다른 마을로 연결해 다니던 지역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포항에선 봉우리가 자연스럽고 예사롭게 재라고 불립니다. 여건이 어떠했기에 ‘산줄기를 종단’해 다니려 엄두 냈던 것일까요? 산줄기가 지나치게 높지 않고 평평하게 이어지는 게 원인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반면 평지는 이어 걷기 어렵거나 거리가 멀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포항의 ‘장기산맥’이 대표적으로 저렇습니다. 거기는 바다가 빙 둘러싸서 평지로 이어걷기가 쉽잖습니다. 이어 걷는다 해도 산줄기 끝을 이리저리 피해서 매우 멀리 돌아 다녀야 합니다. 반면 저 땅에서는 산줄기가 매우 평평하게 이어집니다. 봉우리가 있긴 해도 저 평평한 산줄기에 겨우 조금 솟아 있을 뿐입니다. 저런 지형에서는 가파르고 멀리 돌아서 이어지는 해안 평지보다는 산줄기 위를 이어 걷는 게 쉽고 통행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저곳에서는 예부터 길이 산줄기 위로 났습니다. 그걸 넓혀서 지금은 임도가 거미줄같이 발달해 있습니다. 자동차가 쉽게 통행하고 교행까지 자유스러울 정도입니다. 저런 땅에서 ‘산줄기를 종단할’ 때는, 봉우리들이 자연스레 넘어야 할 ‘고개’가 됩니다. 그러면서 슬며시 ‘재’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겠습니다. ‘고개’보다는 ‘재’가 발음하기 좋고, 다른 말에 붙어서 함께 이름을 형성하기도 유리하니까요. ‘꼰들고개’보다는 ‘꼰들재’, ‘봉수고개’보다는 ‘봉수재’가 기억하고 발음하기에 더 경제적이지 않겠습니까? 산줄기를 ‘종단’하던 장기산맥에서와 달리, 험준한 포항 북부 고산지대의 옛 어른들은 큰 산줄기를 ‘횡단’해 다녔습니다. 그것 아니고는 읍내 시장을 다닐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고산지대 어른들은 험준한 큰 산줄기는 ‘횡단’하되, 그것의 가지산줄기들은 ‘종단’해서 큰 산줄기 횡단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저러할 때도 그 종단하는 가지산줄기 위의 봉우리는 ‘재’로 불렸습니다. 포항 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사실을 무엇보다 명심해야 합니다.(박종봉 투데이포항 고문)